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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들의 반란 ‘스웨그 에이지’ “제대로 터졌다”

2020.03.27

신인들의 반란 ‘스웨그 에이지’ “제대로 터졌다”

2020.03.27 / 한국일보 – 김표향 기자

대학 졸업 작품으로 출발한 뮤지컬 ‘스웨그 에이지: 외쳐 조선!’을 정식 상업 뮤지컬로 성공시킨 주역들. 왼쪽부터 연출 우진하, 음악감독 겸 작곡 이정연, 주연 양희준, 안무 김은총, 극작 박찬민. 사진=배우한 기자
“우리가 큰 무대에 서게 될 거라곤 상상도 못 했어요. 물론, 한 번 공연으로 끝낼 생각도 없었지만요.”

창작 뮤지컬 ‘스웨그 에이지: 외쳐 조선!’(이하 ‘스웨그’) 팀의 즐거운 비명이다. 젊은 패기가 우연한 행운을 타고 공연계의 태풍이 됐다.

뮤지컬 히트작이라면, 대개 ‘티켓 파워’라는 이름 아래 유명 배우를 무대에 세우거나 해외에서 명성을 떨친 라이선스 작품을 들여온 것일 경우가 많다. 하지만 ‘스웨그’는 그런 것과 거리가 멀다. 아마추어 작품, 그것도 서울예대 대학생들의 졸업작품이었다.

그 무대가 상업 뮤지컬 작품으로 변신, 지난해 데뷔전을 치렀다. 알 만한 이름 하나 찾기 어려운 공연이 입소문 덕에 흥행몰이를 시작했다. 회를 거듭할수록 좌석이 메워지더니 팬덤까지 생겨났다. 지난해 예그린뮤지컬어워드에서 앙상블상을 차지했고, 올해 초엔 한국뮤지컬어워드 대상과 작품상 등 무려 11개 부문 후보에 올라 남녀신인상(양희준ㆍ김수하)을 거머쥐었다. 초연 6개월 만인 지난 2월부터는 재공연에 돌입했다. 신인들이 첫 타석에서 홈런을 날려버린 셈이다.

뮤지컬 ‘스웨그 에이지: 외쳐 조선!’은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상을 노래한다. PL엔터테인먼트 제공
‘스웨그’의 내용은 새롭다. 배경은 ‘시조’를 국가 이념으로 삼은 가상의 나라 조선. 역모 사건으로 오직 양반에게만 시조가 허용된 이 조선 땅에서 주인공 단, 그리고 비밀결사 골빈당이 몰래 시조를 퍼뜨리며 자유와 희망을 노래한다. 시조와 랩을 버무리고, 국악과 서양음악을 뒤섞고, 전통 춤사위에다 힙합과 현대무용까지 녹여낸 이 작품은 뮤지컬 팬들의 혼을 쏙 빼놨다.

최근 서울 명륜동 한 카페에서 ‘스웨그 팀’ 우진하(30) 연출, 박찬민(34) 작가, 이정연(29) 음악감독, 김은총(33) 안무가, 주인공 ‘단’ 역을 맡은 양희준(29) 배우를 다 함께 만났다.

대학 졸업작품이란 점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들은 ‘절친’이다. ‘스웨그’의 아이디어도 “서로 장난치고 놀면서 무심코 던진 이야기” 그리고 “시시껄렁한 농담”에서 많이 얻었다. 가령 이방원과 정몽주가 주고받았다는 ‘하여가’와 ‘단심가’는 일종의 ‘랩 배틀’ 아니었을까. 시조와 랩을 섞은 이유다. 한국 사람인데 국악의 정서를 잘 모른다는 게 부끄러워 국악을 축으로 레게, 힙합, 록, 스윙재즈 등 다양한 장르가 어우러진 음악을 만들었다.

주인공 단을 연기한 양희준은 올초 제4회 한국뮤지컬어워드에서 신인상을 받았다. PL엔터테인먼트 제공
창작의 고통이 없었던 건 아니다. 날마다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대본 수정만 5,500번에 이르고, 30번 넘게 새로 쓴 곡도 있다. 과장이 심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비공식 집계이긴 하지만 사실”이라며 다들 웃었다. “파일명은 ‘최종본’인데요, 아무도 그걸 믿지 않았어요. 최종본3, 최종본10, 최종본35… 뒤에 붙은 숫자는 계속 달라지니까요.”

가장 자신 있는 부분은 안무다. 앙상블 배우로도 활동하고 있는 김 안무가는 자신이 하고 싶었던 걸 쏟아 부었다. 모두가 한 번쯤은 무대 중심에서 주인공이 되도록 안무를 짰고, 막이 내려갈 땐 세트의 가장 높은 곳에 앙상블 배우들인 백성이 올라가게 했다. “백성의 작은 외침을 담아낸 작품이잖아요. 이들이 아니면 안 된다는 걸 관객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어요.” 부작용도 있다. “제가 하고픈 걸 너무 다 집어 넣어서, 배우들은 사실 힘들어서 욕 많이 했을 거예요. 하하하.”

‘조선’을 키워드로 잡은 만큼 극은 후반부에서 제법 묵직해진다. 지금 우리 시대가 비치는 건 어쩔 수 없다. 우 연출은 “서울예대가 안산에 있고 단원고도 가깝다”고 말했다. ‘이게 나라냐’ ‘헬조선’ 같은 울부짖음에 뮤지컬 작품으로라도 응답하고 싶었다.

앞으로 무대 안팎에서 자주 만날 얼굴들이다. 눈여겨보고 기억해 두자.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연출 우진하, 극작 박찬민, 안무 김은총, 음악감독 겸 작곡 이정연, 배우 양희준. 사진=배우한 기자
판이 커진 건 PL엔터테인먼트 송혜선 대표의 선구안 덕이다. 송 대표는 조승우ㆍ홍광호 등을 발굴해 낸 인물. 우연히 이 공연을 본 뒤 작품 판권을 사들였다. 완성도 업그레이드를 위해 조명 의상 무대 등은 별도의 베테랑 팀을 붙였지만, 연출 안무 배우 음악 극작은 기존 멤버들을 고스란히 기용했다. 파격적인 결정이었다.

‘스웨그’ 팀은 그래서 공연을 찾아주는 팬들이 정말 고맙다. 팬들 덕에 “기존 뮤지컬계 관행”을 깰 수 있어서다. 요즘은 더 그렇다. 단을 연기하는 배우 양희준은 요즘 커튼콜 때마다 울먹거린다. “마스크를 쓴 관객을 마주하면 감동이 올라와요. 코로나19 우려에도 어렵게 공연장을 찾아주신 걸 아니까요.” 군 제대 뒤 연기를 시작한 양희준은 ‘스웨그’가 첫 뮤지컬이다. 신인상 수상 이후 러브콜이 쏟아진다.

천재들이 노력도 하고 즐기기까지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뮤지컬 ‘스웨그 에이지: 외쳐 조선!’을 보면 알 수 있다. 사진=배우한 기자
‘스웨그’ 20주년 무대는 어떨까, 마지막 질문에 인터뷰 테이블은 금세 왁자지껄해졌다. “20주년엔 악당 홍국 역할 하고 싶어요. 아주 어둡게 연기할 거야.” “그땐 이런 작품이 필요 없는 시대가 돼야지.” “그렇다면 공연이 영원히 계속될 수도 있겠는걸.” 공연은 4월 26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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