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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하] 황건하의 신세계_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배우 황건하 출처: 씨어터플러스

2023.08.18

[INTERVIEW] 황건하의 신세계_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배우 황건하

황건하의 신세계

관객과 하나 되어 ‘번쩍’하는 순간이 가장 짜릿하다는 그와 <오페라의 유령>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editor 이민정 photographer 문겨레

라비던스로, 뮤지컬 <금악>으로, 시어터플러스와 세 번째 만남이네요.
감사하게도요!

좀 마르셨어요.
연습 시작부터 빠지기 시작했는데 아무래도 부담이 컸나봐요. 일부러 뺀 것도 있고 빠진 것도 있고.(웃음)

<오페라의 유령> 서울 공연을 앞두고 있어요. 몇 개월 전으로 돌아가서, 어떻게 이 작품에 참여하게 되었나요.
<금악>으로 뮤지컬 데뷔를 마무리하던 와중에 <오페라의 유령> 소식을 들었어요. 굉장히 기다렸던 작품이거든요. ‘라울’이라는 역할을 하게 된다면 뮤지컬 세계에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겠다 싶었어요. 오디션이 다가올수록 정말이지 엄청 떨었던 기억이 나요. 자주 오는 작품도 아니고, 이번 기회가 아니면 영영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오디션 준비에 저의 모든 걸 쏟아부었어요. 정말 간절했으니까요.

처음부터 하고 싶었던 역할이 라울이었어요?
일단 <오페라의 유령>이라는 작품에 합류한다는 자체가 제게는 너무 행복한 일입니다. 예전에 엄마와 웨스트엔드에서 이 작품을 정말 재미있게 봤고, 제가 몸담고 있는 소속사에 들어갔을 때부터 대표님에게 <오페라의 유령>에 발 한번 담가보고 싶다는 말씀을 늘 드렸어요. 그리고 ‘유령’이라는 너무나 위대하고 훌륭한 캐릭터가 존재하지만, 제 경력과 나이를 고려했을 때 도전해 볼 수 있는 역할이 라울이라 생각했어요. 예전부터 영상 자료를 숱하게 돌려보면서 라울 자체의 매력을 많이 느끼기도 했고 말이죠. 저희 회사에 좋은 선배님들이 많이 계시는데 그분들이 잘 닦아 놓으실 길을 꼭 한번 걸어보고 싶은 마음이었다고 할까요.

치열했던 오디션 과정이 궁금합니다.
뮤지컬 경력이 그렇게 많지 않다 보니까 대표님과 거의 매일 상의하고, 주말마다 회사에 나가서 직원분 앞에 모셔놓고 일주일 동안 연습했던 대사 맞춰보고 그랬죠. 세계적인 작품이라 레퍼런스가 많아서 정말 다양한 라울을 찾아봤어요. 라울을 하게 된다면 나는 어떤 모습이 잘 어울릴까, 역대 배우들을 보면서 이렇게도 해 보고 저렇게도 해봤어요. 정말 끊임없이요. 많은 분들에게 받은 피드백을 수정해가며 오디션 당일까지 열심히 준비했어요. 최선을 다했으니 마음을 비우고 싶었는데 최종 결과가 나올 때까지 시간이 천천히 흐르더라고요.

피 말리는 시간이었겠어요.
맞아요. 딱히 하고 있는 일이 없는 데다 누구한테 말할 수도 없어서 답답했어요. 긴장의 연속이었고, 회사에 매일 전화해서 “저 괜찮으니까 떨어졌으면 떨어졌다고 그냥 말씀해 주세요.”라고 보채기도 했어요. 그러다가 오디션 보고 3주 정도가 지났을까, 암튼 눈이 오는 날이었어요. 떨어졌어도 실망하지 말고 다른 오디션 찾아보자 살짝 마음을 비우고 집안일을 하고 있는데, 대표님으로부터 온 부재중 전화 두 통이 찍혀 있더라고요. 대표님과는 워낙 자주 통화하던 터라 별생각 없이 전화를 드렸더니 “제 전화를 기다리고 계시지 않았나요?” 하시는 거예요. “왜요?” 하고 물었더니, “붙었어요!” 하시더라고요. “진짜? 진짜요? 저, 라울 붙었어요? 그럼 이제 <오페라의 유령> 할 수 있는 거에요?” 믿을 수가 없어서 재차 되물었죠. 아, 지금 생각해도 막 소름이 돋네요. 뛸 듯이 기뻤어요. 일 년 넘게 지났는데 모든 순간이 다 기억날 정도로 생생합니다.

원하고 원하던 라울이 됐어요. 연습이 시작되니 어떻던가요?
원래 낯도 가리는 편이데 엄청난 대선배님들이 눈앞에 계셔서 처음에는 제대로 말도 못 했어요. 이분들과 무대 위에서 함께 공연을 하다니 어떡하지? 잘 해낼 수 있을까? 걱정도 되고요. 그러다가 음악 연습하면서 조금씩 입이 트이고, 장면 연습으로 이어지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게 되더라고요. 연습실 분위기가 조금씩 밝아진다는 걸 느꼈고, 저도 그 분위기를 탔던 것 같아요. 선배님들이 너무 잘해주시고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역할에 대한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이었나요.
<금악>이라는 역사극과 <어차피 혼자>라는 현대극, 제가 전혀 다른 두 개의 뮤지컬을 했잖아요. <오페라의 유령>은 클래식한 매력을 지닌 동시에 지금까지 변함없는 사랑을 받고 있을 정도로 세련된 작품이에요. 변화된 시대에 맞게 말을 조금 풀어서 편하게 하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고유의 맛을 살리는 게 좋을까 많은 고민을 했어요. 고민과 시도, 많은 분들과의 대화 끝에 클래식한 정극의 매력을 살리는 방향으로 결정했죠.

라울의 자료를 살펴보면서 닮고 싶은 배우, 매력적인 라울이라고 생각되는 배우는 누구였어요?
초연 라울부터 시작해서 해외의 라울이란 라울은 다 찾아봤는데 저는 라민 카림루(Ramin Karimloo)가 나오는 오페라의 유령을 정말 많이 돌려봤어요. 굉장히 멋있어요. 영어와 한글의 어감 차이가 있을 것 같아서 우리나라 작품도 많이 봤는데, 제가 너무 존경하는 홍광호 선배님의 영상을 보면서 저렇게 대사를 하고 저렇게 노래해야 하는구나, 방향성을 잡아갔던 것 같아요.

얼마 전 TV 음악 프로그램에서 크리스틴 역의 손지수 배우와 작품 넘버를 부르더라고요. 지금까지 들어왔던 황건하의 음색과 달라서 정말 혹독하게 연습했나보다 생각했어요.
저는 뮤지컬 배우라면 자신이 맡은 캐릭터에 맞도록 목소리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을 해요. <금악> 때는 제가 왕이었기 때문에 근엄해야 했고, <어차피 혼자>에서는 거의 제 소리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할 정도로 가벼운 느낌으로 불렀어요. 사실 <오페라의 유령>이 제일 고민인 게, 라울의 음역대가 제가 평소에 부르는 노래보다 다소 낮은 터라 어떻게 하면 좀 더 생생하면서 자연스럽게 살릴 수 있을까 생각이 많았어요. 그런데 또 계속 연습하다 보니 장면과 상황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있더라고요. 최대한 장면에 집중하려고 노력했고, 노래와 장면의 조화가 일치했을 때의 시너지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라울은 어떤 인물이라고 생각하나요.
제가 오디션 볼 때 코멘트를 받은 부분이 있어요. 귀족인 라울은 누군가를 보듬어줄 줄 아는, 진중하고 부드러운 인물이라 생각했거든요. 라울과 크리스틴의 대표 넘버인 ‘All I ask of you’도 제 귀에는 달콤하게 들렸어요. 그런데 라울은 크리스틴이 기댈 수 있도록 단단하게 서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귀족이면서 군인이기도 하고, 또 나이에서 비롯된 열정과 패기가 넘치는 남자다운 인물입니다.

송원근 배우의 라울과는 어떻게 다른 것 같아요?
연습 시작부터 제가 원근 선배님에게 배운 게 많아요. 연습 초반부터 캐릭터를 만들어 오셨는데 이미 라울이더라고요. 그것도 모두가 좋아할 만한 매력적인 라울의 모습을요. 제가 감히 저와는 이렇게 다르다고 말씀드릴 수 없지만, 보고 있으면 ‘내가 크리스틴이어도 기대고 싶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어요.

부산에서 공연하면서 특별히 기억나는 일이 있었나요.
연습실에서의 마지막 날까지 사실 실감이 잘 안 났어요. 노래에 감정을 담아 열심히 부르지만 사실 허허벌판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부산에 도착해서 무대에 딱 서는데 마음속에 무언가 확 끓는 것이 느껴졌어요. 특히 ‘마스커레이드(Masquerade)’를 처음 무대에서 연습할 때는 ‘와, 진짜 <오페라의 유령>을 내가 하는구나’ 실감했죠. 이 가면무도회 장면이 또 얼마나 화려하고 멋져요? 너무 가슴이 벅차올라서, 혼자 엄청나게 감동했던 기억이 납니다.

부산 공연 마치고 이제 곧 서울 공연이 시작됩니다. 약간의 쉬는 기간 동안 어떻게 보냈나요.
연습부터 막공까지 약 4개월 가량을 타지에서 생활했잖아요. 공연장과 호텔까지 5분밖에 걸리지 않아서 굉장히 편했지만 그래도 집이 아니라 알게 모르게 피로가 쌓였던 것 같아요. 집에 도착한 순간 기분이 좋더라고요. 그런데 또 하루 이틀 집에서 쉬었더니 피로가 싹 다 풀리는 거예요. 그러다가 일주일 쉬니까 심심해졌어요.(웃음) 그래서 청소 같은 집안일을 많이 했어요. 부산에 있을 때 아무래도 호텔이다 보니 짐을 많이 두기가 어렵잖아요. 미니멀한 생활에 익숙해졌는지 집에 오니 필요 없는 짐들이 눈에 띄더라고요. 짐을 많이 버렸어요. 지금은 서울 개막을 앞두고 다시 연습 시작했고요.

모든 생활이 <오페라의 유령>에 맞춰져 있는 것 같아요.
다행히 취미와 일이 같다 보니 더 그렇게 느껴지는데 일에 맞춰진 삶인 건 맞아요. 어쨌든 스케줄을 중심으로 움직이니까요. 혼자 있거나 일이 없을 때 특별한 무언가를 하지는 않아요.

뮤지컬의 매력이 무엇이기에 그런가요?
음악과 연기가 더불어 완성된다는 점에서 유일무이한 장르라 생각해요. 세상에 똑같은 공연이 하나도 없다는 점도 좋아요. 배우마다, 또 상대 배우가 누구냐에 따라 디테일이 달라지는 것은 물론 장면마다 조금씩 다른 노선이 생기죠. 저도 객석에 앉아서 공연을 기다리고 있다가 무대가 조용해지면서 오버추어가 딱 시작되는 그 순간이 정말 즐겁거든요. 다른 세계에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에요. 잠시 현실에서 벗어나 객석에 앉은 모두가 프랑스 파리의 오페라 극장으로 다 함께 들어가는 그 순간이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입니다.

연습실과 무대 위, 어디에 있을 때가 더 행복한가요.
연습은 사실 너무 힘들어요. 물론 그 속에서도 공연을 위한 준비 과정이라 구워도 보고 삶아도 보고 또 튀겨도 보면서, 손을 데기도 하고 베이기도 해요. 공연은 그런 과정을 거쳐 완성된 음식을 드리는 거잖아요. 공연은 무대 위에서 그냥 그 사람으로 살면 되는 거고, 연습은 그 삶을 대비하는 일이다 보니, 무대 위가 더 즐겁기는 해요.

많은 배우분들이 커튼콜이나 노래를 부른 뒤 관객들의 갈채를 받을 때가 가장 짜릿하다고 말씀하세요.
저는 극이 진행되면서 어떤 지점에서 관객과 함께 숨을 쉬고 있다고 느껴질 때가 있어요. 무대 위에서 내가 느끼는 감정을 관객들과 공유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순간이랄까요. 그 순간이 많지는 않았지만 분명 존재해요. 저는 그 순간이 가장 짜릿해요. 유독 그런 날에는 커튼콜 때 관객분들의 얼굴을 보면서 이렇게 되뇌곤 해요. “우리 오늘 되게 좋지 않았나요?”

관객과 ‘우리’가 되는 순간이 정말 있군요.
“3시간 동안 우리 정말 좋았죠? 여러분도 고생 많으셨어요. 정말 감사해요.” 속으로 막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이 작품을 통해 배운 점이 너무 많겠지만 스스로가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갔다고 여겨지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오랫동안 사랑받은 작품은 그만큼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수정과 보완을 거치면서 노하우가 쌓였을 테니까요. 연습실은 말 그대로 배움의 장이었어요. 음악적인 부분은 말할 것도 없고 연기적으로도 이 작품을 통해 많이 성장했음을 느끼거든요. 해외 연출님, 스태프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어서 감사했고, 대선배님들이 노래하고 연기하는 것만으로도 제게는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무엇보다 조승우 선배님이 연습 초반부터 장면 하나하나 섬세하게 짚고 넘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더욱 존경하게 되었어요. 캐릭터가 생생하게 변하고 장면이 살아나는 건 괜히 만들어지는 게 아니구나를 느꼈어요. 말 그대로 대선배님 사이에서 긴장하지 않았을까 여겨지실 수도 있는데 저는 사실 연기, 노래뿐 아니라 배우로서 갖춰야 할 인성과 모범적인 생활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어요. 배우가 스태프를 대할 때의 배려, 선배가 후배를 혹은 후배가 선배를 대할 때의 매너가 다들 너무 좋으셔서 저 역시 좋은 선배,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날마다 한 것 같아요.

어떤 배우로 남고 싶은가요.
요즘은 배우가 좋은 방향이든 좋지 않은 방향이든 작품에 영향을 주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무대는 물론 영화와 드라마에서도요. 좋지 않은 방향이라면 작품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되어 결국 상처로 남더라고요. 그래서 항상 초심을 잃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고, 제 말과 행동을 더 조심하게 되는 것 같아요. 작품에 절대 해가 되는 배우는 되고 싶지 않고요. 관객 입장에서는 어떤 역할이든 제대로 소화해 내는 배우, 동료들에게는 함께 일하고 싶은 배우로 남고 싶어요.

뮤지컬배우인 동시에 라비던스 멤버이기도 해요. 라비던스의 완전체 무대를 기대하는 분들도 정말 많아요.
아,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에 멤버 모두와 만났거든요. 오랜만에 만나서 얘기하고 함께 노래하는데 ‘그래, 이 느낌이었지?’ 하는 게 있더라고요. 너무 즐겁고 많이 웃었어요. 지금 제가 뮤지컬 작품에 집중하고 있지만 서로 연락하며 시간을 조율하고 있어요. 저 역시 라비던스로 무대에 서는 날을 기대하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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