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스웨그 넘쳐나는 창작뮤지컬과 조선 백성에 멋짐이 폭발한다, 뮤지컬 ‘스웨그 에이지 외쳐, 조선!’
2019.06.24 / 민중의 소리 – 이숙정 객원기자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오를 이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두꺼비 파리를 물고 두엄 위에 치달아 앉아
건너편 산을 보니 하얀 송골매가 떠 있거늘,
가슴이 섬뜩하여 풀쩍 뛰어서 내달리다가 두엄 아래에 넘어져 나뒹굴었구나
날쌘 나이기에 망정이지 멍이 들 뻔하였구나
고등학교 때 배운 수십 편의 시조 중 유달리 기억 속에 또렷한 두 편의 시조다. 배울 당시야 시험에 나온다고 죽어라 외우고 또 외워대던 탓인지라 오랜 시절이 지났어도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이 하나 이상할 것이 없다. 하지만 태반이 앞줄 한 구절 기억나는 것이 전부인 데 반해 이 두 편의 시조는 전체를 외울 만큼 선명하다.
앞의 시조는 조선 중기의 문신 양사언의 작품이다. 다음 시조는 작자 미상의 사설시조로 탐관오리의 부패와 허장성세를 비판 풍자하고 있다. ‘태산이~’는 양반이 지은 평시조로 3장 6구 45자 내외의 정형시지만 ‘두꺼비~’는 그런 형식이 파괴된 사설시조다. 지금 우리의 눈으로야 뭐 이런 글이 대단한가 싶지만, 그 당시로 본다면 사설시조의 등장은 파격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임금에 대한 충심이나 효를 읊던 양반계급의 전유물이 글을 모르는 백성에게 주도권이 넘어가면서 시대에 대한 풍자와 비판이 가득한 파격적인 장르가 돼버린 것이다. 아마도 양반들에게 이 시조는 천한 수준 이하의 잡문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도대체 이 담대한 도전은 어떻게 시작이 되었을까부터 시작해 궁금증과 호기심이 폭발해버릴 즈음, 이 작품은 정답지처럼 나타나 막힌 속을 펑 뚫어 주었다.
랩의 라임 못지않은 시조의 언어유희와 ‘오에오’하며 외쳐대는 여음구는 힙합이 되어 어깨를 들썩이게 한다. 아이돌 군단 같은 골빈당 5인의 칼군무와 스웩 넘치는 무대는 조선과 현대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전통극이 현대를 만나 생기는 이질감도 현대가 전통극 속에 녹아야 하는 억지스러움은 찾아보기 힘들다. 양반들의 전유물이었던 정형시가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백성들의 외침을 담아낸 사설시조라는 파격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힙합 스타일의 음악과 춤으로 보여준다. 시조와 힙합이 이렇게 찰떡궁합이었는지 처음 알았다. 참 기발한 생각이다. 하기야 원래 구전문학이란 것이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다듬어지는 것이니 당시 이같은 평민들의 시가가 이 정도 스웨그를 뽐내지 않았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싶다.
‘시조’가 국가이념인 상상 속의 나라 ‘조선’은 역모 사건으로 시조 활동이 금지되었다. 백성들은 자유를 빼앗긴 채 불행한 삶을 살아간다. 양반들의 횡포와 과중한 세금, 전쟁으로 백성들의 삶은 늘 고단하고 힘들기만 하다. 백성들은 그런 고달픔과 한숨을 시조에 실어 시름을 달래곤 했다. 시조 활동이 금지되자 비밀 시조단 ‘골빈당’은 오일장 마지막 날마다 비밀리에 국봉관에서 시조 활동을 하게 된다. 천방지축 후레자식 단은 우연히 국봉관 제일의 시조꾼 진을 만나게 된다. 어린 왕은 시조 대판서 홍국의 꼭두각시가 되었고 홍국은 골빈당을 없애기 위해 혈안이 된다. 그리고 때마침 ‘조선시조자랑’이 열리게 되는데 이제껏 없었던 자신만의 시조를 지어낸 단은 골빈당이 되어 시조자랑에 참여하게 된다.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을 관람하기 전에 알아두면 좋은 꿀팁이 있다. 조선수액이란 용어다. 조선의 흐르는 진액이란 의미로 조선의 멋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공연 중 조선수액은 자연스레 ‘조선스웨그’로 들린다. 수액이건 스웨그이건 귀에 쏙 박히는 용어다. 조선의 비밀 시조단인 ‘골빈당’은 뼈골 자에 빛날 빈이지만 양반들에겐 골빈놈들이란 속된 표현으로 사용된다. 백성을 바라보는 양반들의 시각을 잘 보여준다. 의미의 이중성과 풍자성을 적절하게 표현해낸 이 용어들과 함께 이 작품은 손을 높이 들어 ‘외쳐 조선’을 스웨그있게 외치며 한바탕 놀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힘없는 백성은 거둬들인 곡식을 다 뺏기고도 그런 것인 줄 알고 산다. 원치 않는 전쟁에 끌려가 사지가 잘려도 그런 것인 줄 알고 산다. 하지만 그것이 왜 당연한 일인가. 어째서 백성에게 그것은 당연한 일인가를 묻는 뮤지컬 넘버의 가사는 적지 않은 무게로 다가온다. 스웨그넘치는 이 작품이 예사롭지 않은 것은 단순히 전통과 현대적인 요소를 잘 섞어 놓은 데에만 있지 않다. ‘외쳐, 조선’을 신명 나게 외치는 무대의 주인공이 하잘것없는 백성이기 때문이다. 조선의 주인은 ‘백성’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기 때문이다.
뮤지컬 ‘스웨그 에이지 외쳐, 조선!’
공연날짜:2019년 6월 18일~8월 25일
공연장소:두산아트센터 연강홀
공연시간:150분(인터미션 15분 포함)
제작진:극작 박찬민/연출 우진하/작곡 음악감독 이정연/안무감독 김은총/무대디자인 조유진/의상 디자인 이유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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