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성폭행 장면에 대한 비판… 이 여배우가 밝힌 소신
2018.05.16 / 오마이뉴스 – 김진선 기자
[인터뷰] 6년 만에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로 돌아온 배우 윤공주
[오마이뉴스 김진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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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에서 알돈자 역을 맡은 윤공주의 모습. |
ⓒ 오디컴퍼니 |
단 한 번의 만남이지만 다음을 더 기대케 하는 인연이 있다. 비록 긴 시간이 아니더라도, 닿을 수 없는 무대 위에서의 만남이라고 해도. 작품의 한 인물과 관객으로 마주한 것이 시작이지만, 또 다른 작품이 궁금해지는. 한 번 보고 두 번 봤지만 자꾸만 보고 싶은 그런 배우이자 한 사람, 바로 뮤지컬 배우 윤공주다.
무대 위 윤공주의 모습은 한 마디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그를 바라보는 관객들의 시선도 관점도 너무나 다르다. 매 작품에서 ‘인생캐'(인생캐릭터)라는 수식을 놓치지 않는 그이기에, 그럴 수밖에. 덕분에 머릿속에 그리는 윤공주의 이미지는 달라도, 그를 표현하는 수식은 한결같다. 바로 믿보배(믿고 보는 배우)다.
작품 속에서 만나는 그는 너무나 매력적이라 윤공주라 믿고 싶지 않을 때도 있다. 그저 생경한 한 인물을 마주한 것처럼. 그러면서도 그 인물이 윤공주라 너무나 감사한 때도 있다. 너무나 감정을 잘 터트려줘서, 객석 끝까지 그 열정의 뜨거움을 느끼게 해줘서. 실제 마주한 윤공주 역시 그랬다. 긍정적이고 밝은, 그러면서도 털털함이 묻어나오는 모습은 상대방에게 좋은 기운으로 삶의 활력을 더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그래서 윤공주는 보고 또 봐도 또 보고 싶은 배우이자, 인연이다.
윤공주를 만나기 전에 그에 대한 기사, 글을 하나하나 읽어봤다. 작품에 임하는 각오, 캐릭터 분석, 함께 하는 배우들에 대한 만족감 등 내용은 다양했지만 일관되는 ‘윤공주 키워드’가 있었다. 그를 나타내는 키워드 ‘연습’ ‘노력’ ‘열심히’ ‘공주’ ‘긍정’ ‘감사’ ‘순수’ ‘사랑’ ‘최고의 디바’ ‘변신’ ‘꿈’ ‘혼연일체’ ‘인생캐’ ‘믿보배'(믿고 보는 배우)를 토대로 지난 4일 서울 압구정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제야 완성된 것 같아요. 이번 무대를 위해 그동안 숱한 연습을 통해 감정을 쌓고 쌓은 것 같아요. 물론 지금까지 무대 모두 열심히 했지만, 이번 무대에서는 알돈자의 감정을 고민하고, 연구한 과정까지 분출되는 기분이죠. 저도 느끼는데 관객들 역시 드라마 안에 녹아든 여정까지 공감해 주시더라고요.”
윤공주는 요즘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에서 알돈자로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지난 2007년, 2008년, 2012년에 오른 후 올해 다시 무대에 오른 것이다. 오랜만에 알돈자가 됐지만, 약 6년 만에 오른 무대이니 만큼 감정은 더 차올랐고, 터져 나오는 감성의 파장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라고.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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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에서 윤공주가 열연을 펼치고 있다. |
ⓒ 오디컴퍼니 |
이미 윤공주는 <시카고> <몬테크리스토> <노트르담 드 파리> <마리 앙투아네트> <드림걸즈> <아리랑> <오케피> <아이다> 등 다수 작품으로 다양한 모습을 보였다. 특히 무대 위 그는 역할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존재를 확실히 드러냈다. 각기 다른 시대와 상황 속 절망이나 슬픔을 그저 받아들이기보다 스스로 극복하고 깨고 부수는 등 다양한 여인상을 입체적으로 그렸다. 4번째 오른 작품이지만, 그 안에는 윤공주의 또 다른 변신이 담겨있다.
“꼭 ‘변신을 해야 겠다’라고 생각하고 작품을 시작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항상 변신을 하고 싶어 했던 것 같아요. 감사하게, 나이가 들수록 하고 싶은 작품, 좋은 작품을 하게 되더라고요. 무대에서 잘하고,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런 모든 게 정말 좋은데 또 그 과정마저 재밌으니까요.
작품 안에서 역할이 있다는 것은 존재의 이유 아닌가요! 전 다양한 캐릭터를 하고 싶었어요. 푼수 아줌마에서, 한(恨)있고, 아픔이 있는 캐릭터, 재밌고 웃긴 인물까지, 동적인 거, 정적인 거, 섹시한 거, 청순한 거, 다 하고 싶었죠(웃음). 하고 싶은 작품과 시기가 잘 맞아서 되는 것 같아요. 무대에 선지 20년 가까이 되고 나니 다양한 색을 나타낼 수 있을 거라는 신뢰가 생긴 게 아닐까 싶어요.”
#열심히 연습 #노력하는 배우
“연습이 좋아요(웃음). 왜냐하면, 이렇게 땀을 흘리고 연습하는 과정을 거치면 좋은 결과. 좋은 무대가 펼쳐질 것을 너무 잘 아니까요. 20대에 200번, 1000번 연습했더라면, 지금은 ‘이정도하면 목이 쉬겠구나’를 아니까, 오히려 여유 있는 시간도 갖게 되고. 퀄리티에 집중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했다고 할까요. 특히 제가 부족한 것을 알기 때문에 가만히 둘 수 없어서 연습, 또 연습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잘하는데 겸손이라고요?(웃음)
아니에요(손을 내저으며). 저도 ‘이것밖에 안 되네, 춤이 안 돼’라고 느낄 때 있어요. 배우로서 완벽한 모습을 관객들에게 보여주려면, 연습으로 부족한 것을 채워야 한다는 마음이죠. 무대에서 맘껏 뛰어놀려고, 즐기려고 연습하는 거예요.”
윤공주는 연습, 노력이라는 말에 웃어 보였다. ‘연습’ ‘노력’ ‘열심히’라는 키워드는 한 인물이 되기 위한 ‘필수 과정’이자 작품을 즐길 수 있는 ‘이유’인 셈이다.
#혼연일체
윤공주와 ‘혼연일체’라는 표현은 뗄 수가 없다. 윤공주 역시 이제는 그런 표현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특히나 알돈자가 둘시네아를 받아들이는 것처럼 희망이라는 메시지에 대한 확신이 들었기 때문.
“이제는 조금 동의할 수 있어요. 저와 극 중 인물이 혼연일체 된 것을 제가 느끼니까 이제 받아들일 수 있는 거죠. 더 격한 감정으로 인물을 마주할 수 있으니까요. 알돈자가 자신을 둘시네아라고 소개하는 순간까지, 그 과정이 있잖아요. 돈키호테를 만나고 더 크게 상처를 받긴 하지만, 내 안의 둘시네아를 인정하게 되는.
제가 알돈자처럼 극한 아픔을 가진 건 아니지만, 저 역시 살면서 좌절도 했고, 상처도 받았고, 그러면서 또 살아가고, 믿고, 그런 과정에서 느낀 감정들이 ‘꿈과 희망을 갖는 것이 맞다’라고 확신이 드는 거죠. 알돈자가 둘시네아를 인정하는 것처럼.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요. 알돈자는 매개체고, 제 삶의 방향이나 지향하는 부분이 맞아떨어져 재밌는 거죠.”
#인생캐릭터 #믿고보는배우 #순수
윤공주는 무대에서 가장 순수한 배우다. 덕분에 매 작품 ‘인생캐릭터’라는 극찬을 받고, 작품보다도 배우 자체에 신뢰가 생겨 ‘믿고 보는 배우’가 됐다.
“호(好)가 많아지는 배우가 된 거 같아 기분이 좋아요(웃음). 그리고 제가 몇 년 전보다 배우로서 더 성장했을 것 같아, 그런 모습도 좋고요. 전 다음이 더 기대되고, 궁금한 걸 넘어 다음 작품에서 더 잘 할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무대 위의 저를 기대해주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어요. 아마 80세가 되어도 무대에 설 것 같지 않나요!(웃음)
완벽한 것, 최고는 없는 것 같아요. 연기? 노래? 기준이 어렵잖아요. 작품보다 사람 윤공주가 좋아야 좋은 연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주어진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해 표현하고요. 연기할 때, 가짜로 하면 진짜 제가 보이더라고요. 무대 위에서는 거짓말을 할 수 없어요.”
#긍정 #감사
“<타이타닉>을 할 때 누가 물어봤어요. 나이 드는 게 두렵지 않느냐고요. 제 대답은 ‘전혀’요. 지금이 정말 좋아요. 모두에게 주어진 시간이 있는 거잖아요. 제가 지금까지 한 노력덕에 지금 이렇게 즐길 수 있는 것 같아요. 과거의 저보다 무대에서 더 잘하게 됐고, 인간 윤공주로서도 더 나은 삶을 살게 됐어요. 남들을 잘 이해할 수 있고요. 과거로 돌아가고 젊어지고 싶은 마음도 안 들어요. 앞으로 제가 또 어떤 캐릭터를 만날지 모르겠지 모르겠지만 물론 실패할 수도 있겠지만요, 주어지면 최대한 열심히, 감사한 마음으로 재밌게 할 거예요.”
누구보다도 현재를 즐기고 있고, 또 만족하고 있는 윤공주. 지금까지 지낸 시간을 얼마나 알차게 보냈는지, 또 얼마나 치열한 하루하루로 채웠는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맨 오브 라만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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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는 오는 6월 3일까지 서울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에서 공연된다. |
ⓒ 오디컴퍼니 |
6년 만에 다시 선 <맨 오브 라만차> 무대. 윤공주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의 힘도 더 강해졌다. 배우 윤공주로서, 인간 윤공주로서.
“다시 꼭 해보고 싶었다. 6년 전보다 조금 더 살았고, 달라졌을 테고. 제가 어떻게 할지 모르겠지만 다시 해보고 싶던 작품이었어요. 근데 정말 다르더라고요. 메시지도요. 내면의 본질적인 것을 보고, 다시 한 번 ‘정말 좋다’라고 느꼈어요.
제가 좌절, 상처를 넘어서 긍정의 꿈을 갖고 작품에 임했기 때문에, ‘내가 했기 때문에 당신도 할 수 있다’라는 메시지를 관객에게 오롯이 전할 수 있어요. 물론 사는 게 항상 행복이 넘치고 희망적이지는 않죠. 하지만 아픔 속에서도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저 또한 사람인지라, 공허할 때도 있고 외로울 때도 있죠. 근데 극장에 오면 그런 마음이 싹 사라져요. 그런 공허함이나 외로운 감정 때문에 행복을 더 감사하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요! 계속 행복하면 그게 행복인지 모를 거예요. 알돈자로 무대에 오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수밖에 없겠지만요(웃음).”
하지만 <맨 오브라만차>는 결코 ‘행복감’만 느낄 수 있는 작품이 아니다. 물론 극이 올라갈 때 벅차오르는 감정과 뜨거움은 많은 이에게 ‘가장 사랑하는 작품’으로 꼽히는 이유를 다시 한 번 깨닫게 하지만, 정작 배우로서는 힘들 수 있는 장면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수정 과정을 거쳤다고 하지만, 노새끌이들에게 윤간과 폭력을 당하는 장면은 여전히 보기 힘들다는 평이 많다. 장면에 대해 윤공주는 “전혀 어렵지 않다”며, 정작 생각지도 못한 답을 내놨다.
“필요한 장면일 뿐 전혀 어렵지 않아요. 보는 분들의 마음은 아프고 불편한 장면이지만, 전 감정적, 부정할 수 없는 자신의 현실을 표현하고 싶어요. 제게 어려운 장면, 잘 표현하고 싶은 장면은 돈키호테에게 ‘내가 둘시네아예요’라고 말하는 장면이에요. 저 혼자가 아닌 관객들과 다 함께 느껴야 하고, 공감해야 하는 장면이죠. 그러려면 고도의 진정성이 묻어나야 하는데, 이 장면을 위해선 시작부터 차곡차곡 잘 쌓으려고 해요.”
<맨 오브 라만차>는 작가 세르반테스가 감옥에서 자신의 희곡 <돈키호테>를 죄수들과 함께 공연하는 극중극 형식으로 진행된다. 표현이 다소 어려울 수도 있다. 특히 세르반테스가 즉흥적으로 내놓는 침실 신은 더더욱 그럴 수밖에. 그만큼 더 중요하지만 그만큼 더 깊은 울림을 주는 장면이다.
“매회 모든 장면이 처음이라고 생각하지만, 침실 신은 극 중에서도 각본대로 이뤄지는 게 아니잖아요. 더더욱 처음이라고 생각하려고 해요. 어렵지만 잘하고 싶죠. 두려워하던 알돈자가 자신을 받아들이는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날 몰라보던 돈키호테에게 내뱉는 말,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할지 가늠할 수 없는, 그 모습을 보는 둘시네아의 마음은 어떨지, 받아들이지 않았던 메시지를 선창하는 알돈자!”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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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맨 오브 라만차> 윤공주 |
ⓒ 오디컴퍼니 |
“만약 제가 알돈자였다면? 둘시네아를 알고 꿈을 꾸고 살았을 것 같아요. 제가 경험했던 것처럼 희망, 좋은 영향력, 메시지를 주고 싶어요. 물론 무대 위에서 알돈자로 전하고 있지만요(웃음). 뭐가 하고 싶다는 바람보다, 이끄는 대로, 감사한, 행복함을 느끼는 게 가장 큰 축복인 것 같아요.”
윤공주는 장면 장면을 떠올리며 순간적으로 다시 둘시네아가 됐다. 윤공주가 알돈자였다면 어땠을까. 비슷한 점이 있을까. ‘희망’ ‘꿈’이라는 단어가 언급됐다. 작품에서 전하듯, 이룰 수 없는 꿈은 없다며 윤공주는 “나이에 맞게 무대에 서는 것이 주인공”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어느 작품에서 어떤 역할을 맡든, 항상 주체적으로 빛나는 그이기에 앞으로 어떤 무대에 서도, 세월이 흘러도 그야말로 그 자체로 ‘주인공’인 것이다.
“이룰 수 없는 꿈은 없다고 하잖아요. 그것 또한 진리죠. 지금이 후회하지 않은 시간들이 되길 바라죠. 지금 할 수 있는 역할을 해내는 것이 주인공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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