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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사진제공=오디컴퍼니) |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꿈과 희망을 잃지 말고 맞서 싸워야 한다, 나 자신을 사랑하며 험악한 세상에 올곧게 나로 서야 한다….
스페인 작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 Saavedra)의 고전 풍자소설 ‘재기 발랄한 이달고 돈키호테 데 라만차’(El Ingenioso Hidalgo Don Quixote de la Mancha)가 전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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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사진제공=오디컴퍼니) |
이 고전을 변주한 데일 와써맨(Dale Wasserman)의 대본을 바탕으로 무대에 올린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6월 3일까지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의 만듦새는 훌륭하다.
오만석, 홍광호, 윤공주, 최수진, 이훈진, 김호영, 문종원, 김대종, 이창희 등 배우들의 활약은 대단하고 앙상블들은 역동적이며 다재다능하다.
더불어 몇 차례 변주되는 ‘이룰 수 없는 꿈’(The Impossible Dream), ‘라만차의 사나이’(Man of Ramancha)를 비롯해 ‘알돈자’(Aldonza), ‘둘시네아’(Dulcinea) 등의 넘버들도 의미심장하게 마음을 두드린다.
하지만 주제와 메시지를 다루는 데 있어서의 핵심은 전달 방식이다. ‘맨 오브 라만차’는 그런 면에서 다소 아쉬운 작품이다.
‘맨 오브 라만차’는 신성모독죄로 수감된 작가 세르반테스(홍광호·오만석, 관람배우 우선)를 화자로 내세워 감옥 죄수들에게 심판을 받는 대신 이야기를 들려주는 극 중 극 형식을 띤다.
광기에 휩싸여 스스로가 작위 없는 기사(이달고)라고 믿는 알론조(홍광호·오만석)와 그의 뒤를 따르는 산초(이훈진·김호영) 그리고 알론조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새삼 깨닫는 알돈자(윤공주·최수진)가 엮어 가는 극 중 극 이야기는 의도치 않게 ‘아프니까 청춘이다’ 식의 메시지를 던진다.
제작진들이 “완화했다”고 자신감을 드러낸, 알돈자가 부모에게 버림받고 이러 저리 치이다 급기야 집단 성폭행을 당하는 고난의 표현 수위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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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사진제공=오디컴퍼니) |
꽤 부유하고 지체 높은, 다만 정신줄을 놓아버려 모든 것들을 제 멋대로 생각하고 단정 짓는 미치광이 알론조가 외치는 꿈과 용기가 부조리하고 폭력적인 고난에 둘러싸인 인생을 살았던 알돈자에게도 곧이곧대로 희망이 될 수 있을까.
알론조는 마냥 희망에 차 마구잡이로 부딪히고 우기는가 하면 기행을 일삼으며 환상의 세계를 헤맨다. 그 세계에는 무한 신뢰를 보내는 산초, 마음 약한 여관주인(문종원·김대종) 등의 조력자와 그저 무시하고 방관한 다수의 인물들이 있었으니 알론조의 돈키호테는 완벽한 환상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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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사진제공=오디컴퍼니) |
반면 알돈자는 악몽과도 같은 삶을 영위 중이었다. 말끝마다 부엌데기, 창녀 등으로 폄훼되던 알돈자는 매순간 수많은 남자들에 둘러싸여 희롱당하고 잔뜩 독기가 올라 긴장 상태를 유지해야한다.
급기야 집단 성폭행의 피해자가 돼버린 그녀가 원해서 그런 삶과 고난이 닥쳤을 리 만무다. 미치광이 알론조가 “나의 레이디가 그런 이름일 리 없다”던 알돈자는 정숙하고 아름다우며 이름마저 럭셔리한 ‘레이디 둘시네아’여야만 가치를 인정받는 삶이었을까.
그녀에게 이 같은 고난이 닥친 건 태생이 그래서이고 그래서 ‘둘시네아’가 아니면 안되는 존재처럼 부정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알론조가 외치는 꿈과 희망이 알돈자의 가치를 더욱 추락시키고 존엄성을 파괴하는 빌미를 제공한다는 오해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물론 이는 오해일 수도 있다. 대본을 집필한 데일 와써맨은 원작자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였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맨 오브 라만차’를 무대에 올렸다고 했다. 원작자 세르반테스는 그의 말처럼 돈키호테이기도 했지만 가난한 유년시절, 상이군인, 해적의 포로 등으로 밑바닥을 전전하며 고난으로 일생을 보낸 알돈자이기도 했다.
자신의 현실과 이상향을 알돈자와 돈키호테에 나눠 반영한 세르반테스는 ‘맨 오브 라만차’ 중 화자로 감옥에 수감된 죄수들에게 희망을 불어넣고 살아남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며 심판대로 향한다. 이처럼 원작자이자 ‘맨 오브 라만차’의 등장인물인 세르반테스의 가치가 제대로 표현되지 못하는 것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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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사진제공=오디컴퍼니) |
실제 극이 지닌 메시지는 여전히 명확하다. 하지만 명확함에도 오해되기 쉬운 방식으로 전달되는 작품의 메시지는 고전의 가치마저 의심하게 한다. 시대는 급격하게 진화했고 이야기와 표현방식은 그 변화 속도를 감당하지 못하는 형국이다.
“한번이라도 나를 있는 그대로 봐줄 수는 없어?” 알론조를 향한 알돈자의 절규와 그럼에도 마지막에 ‘둘시네아’라 자칭하며 알돈자가 세상에 던지는 도전장이자 의지 사이의 괴리는 좀체 좁혀지질 않는다.
그럼에도 원작과 그 원작을 변주한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가 전하고자 하는 분명한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오해되지 않는다면 극이 전하고자 하는 꿈과 희망은 알돈자에게도, 알론조의 깨달음과 알돈자의 성장을 지켜보는 관객에게도 보다 절실하게 다가갈 가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