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ENT 뮤지컬] ‘맨오브라만차’(1) 세르반테스의 지하 감옥이 아닌, 돈키호테의 라만차 마을로 관객을 데려가기
2018.04.17 / RPM9 – 천상욱 기자
오디컴퍼니가 만든 뮤지컬 <맨오브라만차>가 4월 12일부터 6월 3일까지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에서 공연 중이다. 신성모독죄로 감옥에 끌려온 세르반테스(오만석, 홍광호 분)가 전해주는 극중극 형식의 작품으로, 이룰 수 없는 꿈을 좇는 돈키호테를 둘러싼 이상적인 면과 현실적인 면이 절묘하게 묘사됐다고 평가받고 있다.
본지는 <맨오브라만차>에 대한 기본적인 리뷰로부터 시작해, 대상관계이론(Object Relations Theory) 심리학자 도날드 위니콧(Donald Winnicott)의 ‘참 자기(true self)와 거짓 자기(false self)’, 하인즈 코헛(Heinz Kohut)의 ‘자기대상(self object)’ 개념을 기준으로 총 3회에 걸쳐 리뷰를 공유한다.
◇ 극중극 형태의 이야기, 관객은 세르반테스를 만났다가 돈키호테를 만나는 것을 반복한다
<맨오브라만차>는 공연 시작 전부터 배우들이 무대에 미리 등장한다. 관객이 무대에 적응하기 전에, 배우들이 먼저 관객에게 적응한다고 볼 수도 있다. 뮤지컬이 시작되면 관객은 두 가지의 공연 속으로 두 번 이상 들어가게 되는데, 첫 번째는 종교재판에 회부된 세르반테스가 끌려온 지하 감옥이고, 두 번째는 지하 감옥에 있는 사람들과 같이 들어가게 되는 극중극 형태의 <돈키호테>이다.
<맨오브라만차>가 관객들을 궁극적으로 데리고 가고 싶은 곳은 지하 감옥이 아니라, 돈키호테가 활약한 라만차 마을이라고 생각되는데, 무대 위 등장인물들과 관객들을 라만차 마을로 같이 데려갈 때 감정을 집중하고 격발하기 위해 뮤지컬 처음 시작의 경계를 분명하지 않도록 만들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즉, 뮤지컬의 시작은 관객을 세르반테스의 지하 감옥이 아닌, 돈키호테의 라만차 마을로 데려가기 위한 정서를 구축하기 위한 설정이라고 볼 수 있다.
오케스트라의 라이브로 연주된 <맨오브라만차>의 서곡은 신나는 음악으로 생생함을 전달했는데, 음악을 잘 들어보면 일반적인 인간의 감정을 따라가기보다는 작은 변화를 계속 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 공연의 특징 중의 하나이다.
◇ 현대인들에게 더욱 판타지적인 인물 돈키호테, 그의 상상과 착각은 자기위안
돈키호테는 정해진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는 더욱 판타지적인 인물이다. 세르반테스에게 이상주의자, 엉터리 글쟁이, 고지식한 인간이라고 말하는 것은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적인 면을 지칭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주막집을 거대한 성으로 보는 돈키호테는 일부러 그렇게 보는 게 아니라 그의 눈에는 실제로 그렇게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돈키호테의 상상과 착각은 자기위안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래도 된다는 명분을 스스로에게 줘 자존감을 스스로 높이는 역할을 한다.
◇ 윤공주와 최수진의 알돈자! 극중 캐릭터도 그 배역을 맡는 배우도 가장 힘들 것이다
<맨오브라만차>에서 가장 힘든 인물은 누구일까?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는 이룰 수 없는 꿈일지라도 그것을 향해 돌진할 수 있기 때문에 스스로 행복한 인물이다. 돈키호테의 충성스럽고 유쾌한 하인 산초(이훈진, 김호영 분)는 돈키호테 때문에 고생한다고 생각되기도 하지만, 돈키호테의 존중을 받으며 여정을 함께 한다.
죄수들의 캡틴 도지사는 극중극에서 친절하고 동정심 많은 여관 주인(문종원, 김대종 분)이 돼 돈키호테의 뒤치다꺼리를 맡지만 끌려가기보다는 결정적일 때 주도적으로 선택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돈키호테의 환상 속에서는 아름다운 레이디 ‘둘시네아’이지만, 현실은 여관의 하녀인 알돈자(윤공주, 최수진 분)는 극 중에서 본인에게 막 대하는 6명의 남자를 상대해야 하는데, 감정이입해 연기할 경우 육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모두 쉽지 않다.
돈키호테가 위해준다고 보이기도 하지만, 분노로 차 있던 내면에 돈키호테가 불어넣은 희망을 채웠다가 다시 절망으로 바뀌면서 더더욱 힘들어지는데, 극중 인물의 관계를 볼 때 윤공주나 최수진 모두 스스로 이런 면에 몰입해 연기하고 빠져나와야 하기 때문에, 커튼콜에서 박수와 환호를 받았더라도 알돈자에 감정이입했던 마음의 상처가 점점 누적될 수도 있다. 관객에게 좋은 연기를 보여주기 위해 알돈자의 견딜 수 없는 슬픔을 온몸으로 받은 윤공주와 최수진에게 더 큰 박수를 보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필자가 관람한 회차에 알돈자 역을 맡은 최수진은 노래는 부드럽게 부르는 장면에서도 행동은 거칠게 하기도 했는데, 거의 대부분의 장면에서 서로 상반되는 감정을 동시에 인상적으로 표현했다.
고음을 소화하면서 울분에 찬 마음을 담아 노래를 부를 때도 가사전달력이 좋았는데, 뛰어난 가창력과 함께 점점 더 디테일해지는 표현력은 높은 가사전달력과 함께 최수진이 전달하고자 하는 정서를 효과적으로 공감하게 만든다는 점이 돋보였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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