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에 선정되었던 세기의 명작 ‘닥터 지바고’가 6년 만에 뮤지컬로 한국의 관객과 다시 만났다. 뮤지컬 ‘닥터지바고’는 1957년 이탈리아에서 러시아어로 출간되자 이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그러나 소련 내에서 정치적 강압에 시달리다 작가는 결국 노벨상 수상을 거부했다.
원작 소설은 1905년 러시아 2월 혁명과 러시아 내전 10월 혁명이 배경이다. 당시는 정치적, 사회적인 선택을 용납하지 않은 절박한 시대 상황으로 그 속에서 처절하게 고뇌하는 지식인 지바고의 운명을 다뤘다. 닥터 지바고는 우연인 듯 운명적으로 만난 여인 라라와의 만남과 필연 같은 사랑, 한 시대의 편승자와 낙오자로 분리될 수 있는 수많은 작중 인물의 선택과 운명을 통해, 사회주의 현실에 대한 통렬한 비판, 어쩔 수 없이 버려진 자아와 그로 인한 상식과 인간성의 상실을 부각했다. 작품은 사람과 사람의 권리와 자유를 추구하는 인간들의 절절한 모습을 시리도록 혹독한 추위 같은 대하 역사소설로 그려내고 있다.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장편소설 ‘닥터 지바고’는 1965년 데이비드 린에 의해 영화화되어 당시 역대 흥행 순위를 기록했다. 이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5개 부문을 수상한 바 있다. 급기야 2011년 호주에서 미국과 한국의 프로듀서들이 함께 월드 프리미어로 뮤지컬을 탄생시켰고 2012년 아시아 최초 국내 개막했다. 지난 2015년에는 뉴욕 브로드웨이의 공연을 거쳐 2016년 유럽 프로덕션을 거치고 드디어 2018년 서울에서 6년 만에 무대에 올랐다. 공연은 기존 뮤지컬 대본과 넘버 수정 및 보완, 디자인의 변화 등 한층 업그레이드된 닥터 지바고의 화려한 귀환으로 서울 관객과 마주하게 된 것이다.
뮤지컬 ‘닥터지바고’는 원작 소설과 마찬가지로 뮤지컬에서도 시간과 공간은 1905년 러시아 2월 혁명과 10월 혁명을 배경으로 한다. 극은 러시아 혁명으로 인해 불안하고 급박한 사회주의 체제의 순간을 이겨내려는 구성원의 소시민들과 기회주의자들 사이에서 기어이 피어나는 아지랑이처럼 기구한 만남과 운명적인 사랑은 소설과는 또 다른 무대 언어로 절대 꺼지지 않을 칼날 같은 희망으로 결코 흔치 않은 사랑을 그려내고 있다.
6년 만에 재연하는 이번 프로덕션은 그동안 몇 번의 제작을 통해 보완해야 할 부분을 수정했다. 스태프들의 과감한 변화를 통해 넘버의 재편성 그리고 무대디자인을 비롯한 원작의 정서와 방향은 일치하되 모든 부분을 새롭게 리뉴얼해 그토록 지독했던 러시아의 혁명과 전쟁 속에서도 결코 사그라지지 않은 닥터지바고와 라라의 숙명 같은 사랑을 압축적이며 입체적으로 무대에 그려내 작품을 한층 업그레이드했다.
특히 무대 미쟝센은 세련되고 우아한 격조 있는 뮤지컬로 재탄생하게 하는 기반을 만들어냈다. 무대 영상은 간결하면서도 세련된 무대와 광활한 러시아 설원이나 전쟁터 등 방대한 공간적 배경을 시대적인 역사의 상징과 서사가 묻어난 시간과 정서의 이미지로 담았다. 조명은 시리도록 차가운 설원과 작열하는 태양의 이글거림보다 더 강한 집단과 개인의 폭력으로부터 거부하지 못하고 끝내 거세된 지성과 욕망의 허무함을 모노톤의 조명으로 구현했다.
더불어 클래식한 영화음악 같은 서정적인 멜로디와 시적인 가사들로 인물의 심리적 정서를 끄집어내는 뮤지컬 넘버들은 17인조 오케스트라에 의해 화려한 듯 단아하고 지적인 우아함으로 재포장되었으며 영롱한 별빛처럼 어느새 가슴속에 스며들어 극장을 나온 뒤로도 오래토록 흥얼대며 되뇌게 했다.
무엇보다도 작품은 참신한 아역 배우들과 실력 있는 배우들의 관록과 원숙미가 더해져 더더욱 깊이 있고 안정되었으며 세련된 뮤지컬로 발현됐다. 배우 류정한은 지적인 원숙미와 안정적인 가창력으로 작품의 중심에 섰다. 그는 마치 그 자체가 유리 지바고인 양 작품 속 캐릭터로 완벽 빙의되어 거듭난 모습이다. 배우 조정은은 소설 속 가련한 듯 강인한 캐릭터를 그대로 무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 그는 라라의 실루엣과 카멜레온 같은 연기, 그리고 음색과 호흡마저도 마치 라라를 위해 태어난 듯 탁월한 미성의 호소력과 흡입력으로 순간순간 변하는 정서의 표정까지 아주 찰지게 연기했다. 또한, 코마로프스키의 최민철 배우는 원숙한 가창력과 연기력으로 미워할려야 미워할 수 없는 절대적인 안정적 캐릭터를 살려냈다. 알렉산드로의 김봉환 배우와 안나 역의 이경미 배우 역시 작품의 중심과 무게감을 제대로 잡아 겉잡을 수 없는 혁명과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급변하는 사회와 개인의 심리적 불안감을 여과 없이 그대로 드러내며 관객들을 작품 속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게 했다.
또한, 일인다역을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연기하고 노래한 김기순 배우의 맹활약이 작품의 탄탄한 완성도를 끄집어내는 데 일조했다. 이처럼 이 작품에서는 주•조연 뿐 아니라 일인다역까지 중견 배우들의 열연과 정성이 작품의 곳곳에서 묻어있어 참신한 아역 배우들의 신선함과 열정적이고 에너지 가득한 앙상블들이 더불어 전체 공연의 하모니의 합을 이루며 고고한 세련미와 안정적이고 탄탄한 작품으로 거듭나게 했다.
유희성 칼럼니스트 he2sun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