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형의 ‘모래시계’는 멈추지 않는다 [인터뷰]
2018.01.19 / 티브이데일리 연휘선 기자
김우형 뮤지컬 모래시계 공연 현장 스틸 컷
[티브이데일리 연휘선 기자] 선 굵은 외모와 가죽재킷이 어울리는 풍채까지, 뮤지컬 배우 김우형은 겉만 봐도 ‘모래시계’의 태수와 찰떡궁합이다. 불혹을 앞두고도 소년의 감수성을 간직한 그의 내면은 외모보다 더 태수와 닮아 있었다. 우정과 열정에 들끓는 그는 탁월한 ‘모래시계’ 태수였다.
김우형은 현재 뮤지컬 ‘모래시계'(연출 조광화)로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모래시계’는 1995년 방송된 동명의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다. 건달 태수와 카지노 상속녀 혜린 그리고 검사 우석의 사랑과 우정을 중심으로 1980년대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그린 작품이다. 김우형은 이번 극에서 배우 신성록 한지상과 함께 태수 역을 맡아 노동운동과 민주화 운동에 휩쓸리는 건달의 삶을 풀어내고 있다. 그중에서도 김우형은 다른 배우들과 비교해도 유독 태수와 어울리는 이미지와 감정 연기로 호평을 얻고 있다.
그 배경에는 원작에 대한 김우형의 강한 ‘팬심’이 있었다. 중학생 때 원작을 보며 배우의 꿈을 키웠고, 여전히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라는 것. 섭외 제안을 듣자마자 10초 만에 “나 아니면 누가 하냐”고 생각했단다. 더욱이 여전히 원작의 여운과 정서를 간직한 그에게 뮤지컬 ‘모래시계’는 음악과 서사까지 원작의 매력을 고스란히 담고 있기에 더욱 매료됐을 법하다. 덕분에 이번 공연은 김우형의 인생작이 됐다. 방대한 원작을 압축하는 과정에서 부담과 창작의 고통이 워낙 컸지만 이제는 그만큼 보람을 느끼고 있다는 그다.
무엇보다 김우형은 작중 태수 같은 거친 인생을 “한 번쯤 연기하고 싶은 삶”이라며 동경했다. 학창 시절 감정적으로 힘든 사춘기를 보냈던 터라 거리의 삶을 잘 알기 때문이라고. 그는 “태수 같은 인생도 나쁘진 않은 것 같다”며 “그 안에 우정과 사랑이라는 가치만 살아있다면 멋진 것 같다”고 캐릭터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더불어 김우형은 “저는 비교적 순탄한 삶을 살았다”며 그나마 태수와 닮은 자신의 사춘기를 어느 때보다 소중한 순간으로 추억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데뷔작인 2005년 뮤지컬 ‘그리스’부터 줄곧 주연급으로 활약한 것도 그저 “가진 재능에 비해 너무 운이 좋은 것 같다”고 표현한 그다. “지금의 정서적 자산과 감수성이 모두 학창 시절에 쌓인 것들”이라는 그는 “지금 제 진정한 친구들도 모두 그때의 인연”이라고 했다. 이에 김우형은 고등학교 시절 만난 친구 우석에게 죽음까지 맡기는 태수의 격정적인 감정들에 누구보다도 공감했다.
그런 김우형에게도 모래시계를 뒤집듯 인생을 바꾼 순간들이 있었다. 첫 번째 터닝 포인트는 지독한 슬럼프였다. 20대 후반 뮤지컬 ‘아이다’에 출연하며 뮤지컬을 그만둘까 고민할 정도로 매너리즘에 빠졌던 것. 당시 데뷔 5년 차에 접어들며 ‘신인 치고 잘 한다’는 변명도 불가능해지자 자신의 실력을 냉정하게 돌이켜봤다고. 김우형은 “냉정한 평가에 직면하고 스스로 내가 너무 못한다는 생각이 들자 다 관두고 싶었다. 개인적인 사생활도 힘들 때였다”며 ‘아이다’ 이후 한동안 공백기를 가졌던 이유를 설명했다.
다행히 쉬던 중 우연히 출연한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추가 공연이 슬럼프 극복의 열쇠였다. 그는 ‘지킬 앤 하이드’에 대해 “운명”이라고 표현했다. “내가 할 수 없는 작품인데 나한테 기회가 들어오니 데뷔 때 열정이 다시 생각났다”는 이유에서다. 김우형은 “‘그래 나 그거 잊고 살았지’라는 생각이 딱 들었다”며 “그때부터 비로소 무대를 즐길 수 있었다. 세 번의 ‘지킬 앤 하이드’를 했는데 그때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고 고백했다.
아이가 태어난 순간도 김우형 인생의 변곡점이었다. 동료 뮤지컬 배우 김선영과의 결혼은 분명 소중한 순간이지만, 이미 5년 여의 열애 끝에 친구이자 동료로 생활한 터라 결혼 자체가 자신의 삶을 바꾸진 않았단다. 그러나 아빠가 되는 순간 어느 때보다 강한 책임감과 풍요로운 감정이 그를 덮쳤다.
김우형은 “아빠가 된 이후 매일매일이 첫 경험이다. 오늘도 내일도 우리 아이의 처음인 것처럼, 그 아이와 함께 하는 매일이 제 처음이다”라며 눈을 빛냈다. 그는 “사실 구체적으로 뭐가 바뀌고 처음인지를 대답하긴 어렵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달라지고 있다’는 말을 항상 듣는다”고 했다. 또 주위의 말들에 겸연쩍어하면서도 “아들 덕분에 더 성숙하고 어른스러워지고 있다”고 자신했다.
나아가 김우형은 자신의 인생에서 다시 한번 모래시계를 뒤집 듯 진화할 순간을 꿈꿨다. 그는 “모래시계도 계속 뒤집어야 모래가 떨어진다. 제 인생도 모래시계처럼 계속 뒤집으며 살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뮤지컬 때문에 너무 바빴지만 이제는 때만 맞는다면 영화에도 도전하고 싶다고. 막연하지만 40세가 되면 변화가 있을 것 같다며 설렘을 표하기도 했다. 이처럼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사춘기의 감성으로 인생 변혁을 꿈꾸는 그이기에, 김우형의 모래시계는 멈추지 않을 전망이다.
[티브이데일리 연휘선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제공=인사이트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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