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타이타닉’(사진제공=오디컴퍼니) |
잘 알려진 영화 ‘타이타닉’(Titanic) 속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잭과 케이트 윈슬렛 로즈의 눈물겨운 로맨스는 없다. 그 유명한 OST 셀린 디온(Celine Dion)의 ‘마이 하트 윌 고 온’(My Heart Will Go On)도 없다.
제임스 카메론의 동명 영화보다 7개월 먼저 무대에 올랐던 뮤지컬 ‘타이타닉’(2018년 2월 11일까지 샤롯데씨어터)은 실재했던 1912년 타이타닉 호 침몰사건을 다루고 있다. 당시 최대 규모 여객선의 출정부터 침몰까지 5일간의 여정을 담은 뮤지컬 ‘타이타닉’의 미덕은 실화에서 오는 감동이다.
뮤지컬 ‘타이타닉’(사진제공=오디컴퍼니) |
저마다의 꿈과 희망을 안고 승선했던 배는 출항 5일만에 세상에서 사라져버렸다. 누군가는 죽음을 기다렸고 또 다른 이들은 그 죽음과 침몰을 지켜봐야 했다.
그 5일, 출항부터 침몰하는 마지막 순간까지를 담은 ‘타이타닉’은 전통적인 기승전결을 따르기보다 병렬식으로 스토리를 배치하고 수시로 교차시킨다.
이번 출항을 마지막으로 은퇴할 에드워드 스미스 선장(김용수)은 마지막까지 배를 지키고 타이타닉의 설계자 토마스 앤드류스(문종원·서경수, 이하 가나다 순)는 죄책감으로 혼란을 겪는다. 소유주 브루스 이스메이(이희정) 회장은 가장 빠른 기록에 목매며 급기야 침몰의 원인을 제공한다.
이들을 비롯한 1·2등 항해사 윌리엄 머독(왕시명)·찰스 라이톨러(이상욱), 무선기사 해롤드 브라이드(정동화), 보초 프레드릭 플릿(권용국), 화부 프레드릭 바렛(조성윤·빅스 켄), 수석지배인이자 1등실 승무원 헨리 에치스(이준호)·벨보이 에드워드(박준형) 등 선원들은 저마다의 자리에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다.
이들 선원들을 비롯해 메이시스 백화점 소유주 이시도르(김봉환)·아이다(임선애) 스트라우스 부부, 1등실 진입을 꿈꾸는 2등실의 앨리스(윤공주)·에드거 빈(전재홍), 캐롤라인 네빌(임혜영)·찰스 클라크(서승원), 짐 파렐(송원근)과 세 명의 케이트(김리·방글아·이지수) 등 1, 2, 3등실 승객들의 사연이 26곡의 넘버에 담긴다.
뮤지컬 ‘타이타닉’(사진제공=오디컴퍼니) |
부푼 꿈을 안고 타이타닉 호에 올랐던 선원들과 승객들이 죽음 앞에서 발휘하는 인류애에 꼭 맞는 웅장하고도 깊은 울림의 넘버들이 12인조 오케스트라 선율에 실린다. 설계자 앤드류스의 ‘어느 세대나’(In Every Age)부터 출연진 모두가 한 목소리를 내는 ‘타이타닉에게 축복을’(Opening-Godspeed Titanic)까지 7개 넘버로 꾸린 15여분짜리 오프닝은 그 중 백미다.
뮤지컬 ‘팬텀’ ‘나인’ 등의 작사·작곡가 모리 예스톤(Maury Yeston)의 웅장한 넘버를 비롯해 이 작품의 또 다른 묘미는 스미스 선장과 앤드류스, 이스메이를 제외한 모든 캐스트들이 2개 이상의 역할을 연기한다는 것과 3등급으로 극명하게 나뉜 계급을 시각화한 축구장 크기, 11층 높이의 선박이다.
뮤지컬 ‘타이타닉’(사진제공=오디컴퍼니) |
설계자 앤드류스, 화부 바렛을 제외하고는 원캐스트로 무대에 오르는 배우들은 15~30초 간격으로 변신해 다양한 인물을 연기한다. 화부나 무선기사를 비롯해 1·2·3등실 승객들은 전혀 다른 등급의 승객들이 되는가 하면 악사가 되고 연인, 부부 등 다양한 신분과 계급의 인물이 된다.
다소 복잡하거나 번잡스러울 수 있는 있는 형식의 멀티롤(다양한 역할을 소화하는) 캐스트, 모두가 주인공인 배역, 그래서 적지 않은 몹 넘버(단체 합창) 등은 뮤지컬 ‘타이타닉’의 호불호의 갈림길이기도 하다.
뮤지컬 ‘타이타닉’(사진제공=오디컴퍼니) |
그럼에도 새로운 방식의 캐스트와 넘버, 이야기 전개방식은 단점 보다는 장점을 부각시킨다. 수시로 1·2·3등실 승객으로 변신하는 배우들의 열연은 죽음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고 존엄한 인간임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더불어 기승전결 없이 비슷한 크기로 잘게 쪼개, 자칫 지루하거나 따라가기 어려울지도 모를 병렬식 교차 방식의 이야기 전개도 깔끔하게 연출됐다.
다만 인류애를 논하면서 남녀 간의 로맨스로만 일관하는 사연들이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이다. ‘케이트’라는 같은 이름을 가진 세 여자들의 우정은 한데 모여 꿈을 노래하는 데서 그쳤고 연인에 대한 로맨틱한 프러포즈로 형성된 화부 바렛과 무선기사 브라이드의 공감대 역시 그걸로 끝이다.
뮤지컬 ‘타이타닉’(사진제공=오디컴퍼니) |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1등실 승무원 에치스와 승객이 서로에게 전하는 마지막 인사, 침몰 직전까지 음악을 연주하는 선상 밴드 지휘자 등 정도를 제외하고는 이시도르와 아이다 부부, 앨리스·에드거 부부, 캐롤라인과 찰스, 파렐과 케이트 등 대부분 사연들은 남녀간의 로맨스로 일관한다.
남녀간의 로맨스 하나만으로 부모와 자식, 우정, 사회의 어른과 젊은이 등 인간이 다양한 형태로 주고받는 사랑을 아우르기는 역부족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는 병렬식 전개방식의 밋밋함, 웅장한 합창의 난무, 극의 중심을 잡는 캐릭터 및 이야기의 부재, 각 커플의 반복되는 장면·상황 등과 맞물려 아쉬움을 더한다.
하지만 이 또한 수시로 교차하며 자칫 번잡스러워질 수 있는 이야기들의 이해를 돕는 장치이자 극 중심을 관통하는 메시지를 일원화하기 위한 설정 혹은 표현방식이기도 하다. 이처럼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릴 요소들을 가지고 있지만 뮤지컬 ‘타이타닉’은 어느 한 역할도 허투루 하지 않는 배우들의 고군분투와 하모니, 극이 전하는 인류애 메시지만으로도 힘을 발휘하기에 충분하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