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타이타닉>의 푼수 아줌마 배우 윤공주
2017.12.07 / 채널예스 – 윤하정 기자
뮤지컬 <타이타닉>이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지 20년 만에 국내에서도 첫 출항에 나섰습니다. 1912년 4월 영국 사우스햄프턴을 출발해 미국 뉴욕을 향해 달리다 닷새 만에 북대서양에 침몰한 초호화 여객선 타이타닉은 사고가 난 지 73년 만인 1985년 선체가 발견됐고, 1997년 이를 소재로 만든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영화 <타이타닉>이 개봉되면서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는데요. 별다른 정보 없이 뮤지컬 <타이타닉>을 봤다면 많이 의아할 겁니다. 뮤지컬은 영화를 모티브로 하지 않았거든요. 그러니까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이 연기했던 잭 도슨, 로즈 역이 없습니다. 뮤지컬 <타이타닉>은 당시 탑승했던 다양한 승객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들여다봅니다. 주인공이 따로 없는 셈이죠. 이런 무대에서 가장 눈에 띈 배우 가운데 한 명은 2등실 승객 ‘앨리스 빈’ 역을 맡은 윤공주 씨가 아닐까 합니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인근 카페에서 윤공주 씨를 직접 만나 작품에 관한 이런저런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첫 음악연습을 하고 리딩을 하면서 감동받았어요. 그래서 작품이 정말 잘 됐으면 좋겠어요.”
<타이타닉>은 당시 탑승했던 다양한 승객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다 보니, 배우들이 많게는 5개의 배역을 연기해야 하는 ‘멀티-롤(Multi-Role) 뮤지컬’인데요. 국내에서는 접하기 힘든 형식이라 배우들 도 당황했을 것 같습니다.
“대사 한 마디만 있어도 무대에 있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니까요. 배역이 크고 작고는 제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고요. 그래서 대본도 안 보고, 컴퍼니, 오랫동안 알고 지내온 분들이라 믿고 참여했어요. 우리나라에는 이런 형식의 작품이 없으니까 분명히 호불호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했어요. 한 사람의 이야기를 깊게 파기보다는 다양한 인물을 짧은 장면에서 다 보여주다 보니 좀 복잡할 수도 있고, 감정이입이 쉽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하지만 그 부분은 저희 배우들이 더 열심히 해서 채워나가야겠죠.”
말씀하신 것처럼 파격적인 형식의 무대라 관객들도 처음에는 낯설게 느꼈던 것 같습니다. 여러 인물의 이야기를 나열하다 보니 좀 지루한 면도 있고요.
“초반에는 1막이 너무 길다고 느낀 분들이 많더라고요. 그런데 지금은 드라마적으로 더 쫀쫀해졌어요. 원캐스트라서 배우들이 체력적으로 힘든 면도 있지만, 매일 호흡을 맞추다 보니까 그 인물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건 시간이 흐를수록 더 짙어지는 것 같아요.”
배우들도 이 형식에 적응하기까지는 힘들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저희한테는 맡은 캐릭터가 있고 노래와 대사가 있으니까 각각의 상황 안에서 집중해서 연기하는 거죠. 그런데 한 인물의 얘기를 길게 이어갈 수 없으니까 짧은 장면 안에 캐릭터가 원하는 것을 더 잘 표현해야겠더라고요. 저는 앨리스를 연기하면서 3등실 승객으로 한 번 나오는데, 다른 배우들은 옷 갈아입느라 정신없어요. 여배우들은 가발로 바꿔야 하니까.”
배 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인데, 연습 때는 어떻게 했나요?
“세트는 없었지만 모형을 미리 만들어서 설명을 해주셨어요. 어느 정도 상상하면서 연습했죠. 실제 세트가 축소된 모형이라 어떤 모양인지는 알고 있었는데도 무대 봤을 때 정말 예쁘고 멋있더라고요.”
객석에서 듣기에는 음악도 기존 작품과는 많이 다릅니다. 대부분이 합창이라 그런지 성악적인 발성이 많이 들리기도 하고요.
“좀 더 클래식하고 합창이 많아서 하모니가 중요하죠. 음이 높다 보니까 가성이나 두성을 쓸 수도 있고, 바다 위에 있는 느낌을 살린 반주도 있고요. 드라마에 음악이 90% 이상 깔리고, 그 음악에 맞게 대사도 해야 하는 상황이라서 에릭 연출이 오기 전에 2주 정도 음악 연습만 했어요. 음악이 대사처럼 돼 있으니까 정확해야 하거든요. 대사가 조금 어긋나면 음악도 놓쳐버리게 돼요.”
연습실 분위기는 어땠나요? 주인공만 하던 분들이 어찌 보면 여러 개의 단역을 해야 하는 상황이잖아요.
“마음이 오히려 편했을 수도 있어요. 항상 무대 위에서 극을 끌어가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그 부담을 나눠 가질 수 있잖아요. 그리고 금요일에는 ‘Beer Friday’라고 연습 끝나기 1시간 전부터는 맥주를 마시면서 연습하는 등 재미있게 연습했어요. 제 캐릭터가 그래서인지 몰라도 더 재밌었던 것 같아요.”
그러게요, 무대에서 확실히 돋보이던데 이렇게 활달한 인물은 오랜만이죠?
“소극장 공연 때는 많이 했었죠. 요즘은 대학로에서 저를 불러주시지 않아요(웃음). 저는 소극장 공연 좋아하고, 기회가 되면 연극도 하고 싶은데. 아무래도 최근에 <아이다>, <아리랑> 등에서 어두운 역할을 하다 보니까 저도 더 재밌게 연기하게 돼요. 앨리스가 저랑 비슷하더라고요. 호기심 많고 말 많고(웃음).”
그러고 보면 진지한 연기, 코믹한 연기를 자유자재로 소화하시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는 <그리스>의 샌디 같은 청순한 역할만 하다 보니까 <맨 오브 라만차>의 알돈자 같은 거친 역할도 하고 싶어서 도전했고, 그 뒤에는 웃긴 역할도 하고 싶더라고요. 배우는 한 가지 이미지에 박힐 수 있는데, 저는 그럴 수도 없는 외모예요. 제가 엄청 청순하거나 엄청 섹시한 외모도 아니니까. 이런 제가 좋고, 이렇게 10여 년을 무대에 서다 보니까 많은 분들이 다양한 캐릭터의 1순위는 아니어도 2~3순위로는 생각해 주시더라고요. <타이타닉>의 웃긴 아줌마 역할을 했으니까 다음에는 좀 더 정적인 역할 해보고 싶어요.”
그렇게 변화할 수 있다는 거잖아요(웃음)?
“엄청나죠(웃음)! 제가 알아요, 무척 잘하는 건 아닌데 얼추 다 하거든요. 그게 재밌고 좋아요. 남과 비교해서 쫓아가려던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게 없어졌어요. 내가 맡은 작품, 맡게 된 인물을 충실하게 재밌게 하고 싶어요.”
원캐스트라서 힘들겠어요. 월요일만 쉬는 거잖아요.
“매일매일 공연한다는 게 쉽지는 않아요. 3개월 동안 마티네까지 있는 주 9회 공연은 정말 10년 만에 하는 것 같거든요(웃음). 그런데 앨리스라는 인물이 말이 많고 활달해서 그런지, 다 같이 극을 끌고 가는 작품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배우로서 조금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저희 작품이 최고인 것 같고 재밌어요. 체력은 워낙 좋은 편이라서 감기 걸리지 않게, 목 관리 잘하면 행복하게 공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2막에서는 많은 분들이 세월호를 떠올리더라고요. 배우들도 힘드실 것 같아요.
“배우들도 그런 얘기했어요. 연습하면서도 많이 울고. 이번 작품도 감정이입을 하면 너무 무섭죠. 새벽에 바다 한 가운데서… 공연을 자주 보는 팬은 ‘1막에서 인간의 위대함을 보여준다면 2막에서는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지 보여주는 것 같다’고 얘기하더라고요. 메시지가 좋은 작품이에요. 타이타닉호가 침몰하는 비극이 아니라 그 속에서 또 다른 희망을 꿈꿨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놓치고 사는 소중한 것들, 소중한 사람들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는…”
뮤지컬 <타이타닉>과 함께 2017년을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할 텐데, 어떤 생각 하세요?
“지금 이 순간 즐겁게 최선을 다해서, 후회 없이 살자! 무대에도 후회 없도록,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 할 수 있기를 바라며 서거든요. 그래서인지 작년 한 해보다 올 한 해가 나았어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고 할까요. 그동안 내 것만 하느라 바빴다면 이제는 조금씩 주변을 바라보게 됐고, 앞으로 할 수 있다면 베풀 수도 있으면 좋겠고요. 내년에도 별다른 계획은 없고, 그냥 건강하게 재밌게 작품 하고 싶어요.”
뮤지컬<타이타닉>은 확실히 색다른 공연입니다. 주연급 배우들이 주인공이라는 중압감에서 벗어나 무대를 좀 더 편하게 즐긴다면 관객들은 그런 배우들의 다양한 연기 변신을 한 무대에서 감상할 수 있죠. 오랜만에 윤공주 씨의 코믹한 모습도 볼 수 있고요. 국내 첫 출항에 나선 뮤지컬 <타이타닉>은 내년 2월 11일까지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됩니다. 색다른 형식의 극과 음악, 감각적인 무대 세트, 그리고 지구상에서 움직이는 가장 거대한 물체가 사라지는 모습, 그 대신 떠오르는 것을 직접 확인해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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