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고전은 시대를 초월하는 힘이 있다고 말한다. 문학사적으로 가장 추앙받는다고 할 만한 셰익스피어의 대표작이자, 그 중에서도 캐릭터적으로 가장 독보적인 위치에 있는 ‘햄릿’. 그것도 연극이 아닌 창작 뮤지컬로 새롭게 태어난 ‘햄릿’은 관객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다. 게다가 원작의 서사를 그대로 따라가는 충실한 접근에 홍광호 배우가 햄릿을 연기한다면 더더욱. 그간 무수히 변주되며 그 정체성에 대해 여러 모습으로 재해석됐던 인물 ‘햄릿’을 뮤지컬 ‘햄릿:얼라이브’는 어떻게 해석했을까.
주연을 맡은 홍광호는 예상과는 다른 모습(attitude)으로 햄릿을 연기해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의 햄릿은 나약하고 우유부단한 귀공자가 아니었다. 게다가 그는 무대 위에서 햄릿을 -정확히는 햄릿을 연기하는 것을- 전혀 고민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고민에 흔들리기보다 확신에 차 있는 홍광호의 햄릿은 결벽적일 만큼 정의롭고, 잔인할 만큼 단호하며, 뜨겁게 고뇌하는 남성미 넘치는 햄릿이었다.
설명하려 하지 않는 확신, 햄릿의 현신(現身)을 만나는 듯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그의 저서에서 햄릿을 “가냘픈 꽃이나 자랄 수 있는 화분에 오크 나무를 심은 격”이라고 비유한 바 있다. 다시 말해 햄릿을 연약하고 우유부단한 귀공자 캐릭터로 해석해 비극의 주인공으로서는 적합하지 않다는 부적격 판정을 내린 것이다. 이는 인물 ‘햄릿’이 가지는 미스터리하고 다소 이해하기 힘든 모순적 성격 때문인데, 단순한 복수극이라 하기엔 주저와 망설임이 많은 햄릿의 일탈적 행동이 주된 원인이었다. 그렇다면 햄릿은 정말 유약하고 우유부단한 귀공자일 뿐일까.
예전부터 해석의 논란이 된 지점은 자신의 아버지인 왕을 살해하고 어머니를 왕비로 맞아들인 숙부에 대한 복수가 왜 자꾸 지연되는가 하는 점이었다. 뮤지컬 ‘햄릿:얼라이브’에서 햄릿을 연기한 홍광호는 처음부터 숙부에 대한 강한 반발심과 적개심을 가지고 있고, 이는 아버지의 유령을 만나면서 절정에 달한다. 이 작품이 그야말로 살아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연기와 넘버로써 토해지는 강렬한 햄릿의 감정표현 덕분인데, 햄릿을 단순히 나약한 번민의 캐릭터로 해석하기보다는 강한 복수심을 내면에 억누르며 때를 기다리는 맹수와 같이 표현했다.
특히, 홍광호는 무대 위에서 햄릿의 캐릭터를 굳이 설명하려 하거나 연기하려 하지 않는다. 마치 그 자신이 햄릿이라는 듯한 확신이 자연스러운 연기로 극을 움직이게 한다. 뮤지컬의 특성상 원작의 섬세한 대사를 다 살리지 못했음에도 서사의 흐름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 또한 햄릿의 힘이 컸다. 그의 초반부터 강렬한 복수심과 분노는 인간에 대한 회의와 실망감, 삶과 죽음에 대한 고뇌로 이어지면서 서사의 일관성과 객석의 공감을 얻는 데 성공한다. 물론 그 과정에 무수히 놓인 주옥같은 대사들이 어쩔 수 없이 생략되거나 노래가사로 각색된 것은 아쉽다. 하지만 원작의 맛을 그대로 살린 명대사는 간간히 살아남아 가슴을 뛰게 한다. 원작을 사랑하는 관객이라면 명대사에 감정이 실려 음악으로 전달되는 넘버의 힘에도 충분히 매료될만하다.
선왕의 유령와 햄릿과의 조우, 그 강렬한 무대연출
무대 연출은 매우 단순하고 현대적이다.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부분이 있다면 조명의 연출이다. 어두운 밤 선왕의 유령을 찾아 나선 햄릿의 등 뒤로는 새로운 왕을 위한 축포가 터진다. 궁월에서 들려오는 환호성과 화려한 축포는 햄릿의 내면과 대비되며 쓸쓸함을 더한다. 특히 햄릿이 선왕의 유령과 조우하는 부분은 무대 뒤쪽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백색 조명이 객석까지 길게 빛을 드리우며 마치 현실 세계가 아닌 듯한 신비함과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여기에 폭발적인 두 배우의 듀엣곡 ‘복수를 해다오’가 더해지면 1막에서 잊을 수 없는 명장면이 연출된다. 선왕의 유령은 그 이후 특별한 등장이나 언급이 없어도 이 강렬한 한 장면으로 그의 존재감을 이어가며 햄릿의 고뇌를 납득하게 하는 강한 공감대로 작용한다.
또 인상적인 오브제가 있다면 일견 평화로워 보이는 장면 위에서 무대를 일그러뜨리며 비추고 있는 커다란 원형거울이다. 선왕의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성대하게 치러지는 결혼식 장면과 같이 인간의 욕망과 위선이 가득한 곳에서 이 거울은 모든 것을 천장 위에서 거꾸로 뒤집어 비추며 비웃는 듯하다. 그밖에 자신이 지은 죄에 두려움을 느끼는 클로디어스의 등 뒤로 위압적으로 서 있는 철갑의 오브제, 햄릿이 무기로 총을 활용한 점도 눈에 띄었다. 여기에 의상 또한 현대적인 색감을 더한다. 화려한 궁중과 고독한 왕자 햄릿의 처지를 현대적인 의상과 고전 소품을 조합해 표현하려한 시도가 어색하지 않게 극에 녹아들어 시각적으로 흥미로웠다.
극중극 ‘쥐덫’, ‘사느냐 죽느냐’ 등 명장면, 원작의 깊이 되살아나
연극을 뮤지컬 언어로 바꾸는 과정에서 더욱 빛을 발하게 된 장면도 있다. 햄릿이 숙부 클로디어스의 죄를 묻기 위해 선보이는 극중극 ‘쥐덫’은 유랑극단과의 만남부터 ‘쥐덫’의 상연에 이르기까지 역동적인 안무와 노래가 더해지면서 극중극이라는 소재를 더욱 빛나게 했다. 비극적인 극에도 희극적인 요소를 교묘하게 배합한 것이 셰익스피어 극의 특징이라면 뮤지컬 언어로 표현된 극중극이야말로 촌철살인을 유쾌하게 선보이는 골계미를 느끼게 하는데 탁월했다.
또한, 햄릿이 묘지기와 무덤가에서 대화하며 이미 죽어 뼈만 남은 수많은 이들의 사연과 마주하는 대목 또한 뮤지컬적인 무대 연출과 만나 원작의 깊이가 그대로 살아난 느낌이다. 다양한 죽음의 실체와 마주한 햄릿의 내면은 2막의 절정 ‘사느냐 죽느냐’로 나아가는데 숙부에 대한 복수심에 들끓으면서도 자신의 삶의 목적이 단지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서였나에 대해 깊이 고뇌한다. 넘버 ‘사느냐 죽느냐’는 원작의 명대사를 앞세운 대표곡으로 운명에 맞서려는 강인한 남자 뒤의 고뇌 짙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원작을 사랑하는 관객에게 홍광호의 햄릿은 흥미롭다. 시대를 뛰어넘어 햄릿이 오늘날 살아있다면 이런 모습일 수밖에 없다는 배우의 확신. 그 확신이 당연한 체화로 바뀌어 무대에 선 순간 관객은 강렬한 햄릿의 현신을 만나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의 노래도 의심할 것 없이 훌륭했으나 더욱 인상적이었던 것은 ‘노래’가 아니라 좀 더 실질적인 것, 즉 ‘햄릿’이라는 생생하게 살아 있는 육체적이고도 정신적인 존재감 그 자체였다. 무대 위 확신에 차 연기하는 햄릿의 눈빛과 표정과 손짓은 고전 텍스트의 모호함과 여백을 뚜렷이 채우는 훌륭한 서브텍스트가 되었다.
그간 햄릿에 대한 해석이 분분했음을 고려할 때, 홍광호는 햄릿을 연기했다기보다는 역으로 그의 햄릿으로 원전을 설득한 듯하다. 이 압도적인 햄릿이야말로, 고전에 시대를 초월하게 하는 힘이 있다면 단순히 그것은 텍스트의 힘이 아니라, 해석하는 배우의 확신이 탄생시키는 새로운 생명력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고전은 늘 죽은 자가 아닌, 살아있는 자들의 영혼을 빌려 부활하기 때문이다.
박세은 newstag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