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트윈터뷰]’렌트’ 전나영X김수하를 지탱하는 힘
2020.07.12 / 뉴스컬처 – 이솔희기자, 정태윤기자
뮤지컬 ‘렌트’ 전나영 김수하 인터뷰
뉴스컬처가 한 작품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각을 담아보고자, ‘NC트윈터뷰'(TWIN+INTERVIEW)를 기획, 연재합니다. 서로 다른 매력, 다른 역할로 무대를 채우는 배우, 스태프를 만나 작품에 대해 심도 있게 다가갑니다. 여섯 번째 주자는 뮤지컬 ‘렌트’의 배우 전나영, 김수하입니다.
[뉴스컬처 이솔희 기자] 독보적인 실력, 넘치는 끼부터 해외 무대를 휩쓴 경력, 친자매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판박이인 외모, 이에 더해 무대를 향한 뜨거운 열정과 깊이 있는 태도까지. 전나영과 김수하는 평행 이론 마냥 똑 닮아 있다.
그런 두 사람이 ‘렌트’ 무대에서 만났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한 무대에 서게 된 두 사람은 인터뷰 내내 서로를 향해 단순한 동료 이상의 애정을 드러냈다. 전나영이 먼저 ‘렌트’를 향한 애틋함에 눈물짓는 김수하를 차분하게 다독여주면, 김수하는 머릿속으로 차근차근 단어를 고르는 전나영에게 힘을 실어줬다.
이처럼 두 사람은 나이 차이를 뛰어넘어 서로에게 때로는 언니가, 때로는 동생이 되며 돈독한 사이를 다져왔고, 이런 애틋함은 무대에서도 빛났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를 지탱하는 힘이 됐다.
뮤지컬 ‘렌트'(연출 앤디 세뇨르 주니어, 제작 신시컴퍼니)는 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을 현대화한 작품이다. 뉴욕 이스트 빌리지에 모여 사는 가난한 예술가들의 꿈과 열정, 사랑과 우정, 그리고 삶에 대한 희망을 그린다.
조나단 라슨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렌트’는 1996년 오프 브로드웨이 초연 당시 사회적으로 터부시됐던 동성애, 에이즈, 마약 등을 수면 위로 드러냈음에도 불구하고 큰 사랑을 받았다. 국내에서는 2000년 처음 공연됐고, 2011년 이후 9년 만에 다시 관객을 만나고 있다. 전나영은 모린 역을, 김수하는 미미 역을 맡아 무대에 오른다.
Q. 오랜 시간 사랑받은 작품이다. 두 사람이 지닌 ‘렌트’의 첫 기억을 떠올려 보자면.
전나영: 대학교 1학년 합창 시간에 ‘Seasons of Love’를 부르게 됐다. 그때 처음 ‘렌트’를 알고 좋아하게 됐다. 그 후 한동안 ‘Seasons of Love’만 불렀다.
김수하: 고등학교 워크샵 때 모린 역을 맡았었다. 그때 AR을 구해서 맨날 들었는데, AR 속 모린 역을 맡은 배우가 현재 안무감독님이신 황현정 선생님이셨다. 음악이 너무 좋아서 계속 제 마음을 움직였다. 그때도 미미를 하고 싶었는데, 이번에 하게 돼서 영광이다.
Q. ‘렌트’는 배우들에게도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작품 아닌가. 한국 초연 20주년에 함께 하게 된 소감이 어떤가.
김수하: 이 시기에, 이 나이에 미미라는 역할을 만나서 너무 운이 좋은 것 같다. 좀 더 어렸다면, 또 좀 더 나이가 들었다면 지금 제가 표현하는 미미를 표현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 모든 걸 쏟아붓고 있다. 시기가 이렇다 보니 정말 매일 막공처럼 한다. 내일 공연이 없을 수도 있으니까. 아쉬움이 남지 않게 하려고 한다.
전나영: 그동안 미미를 해보라고 제안을 많이 받았었다. 하지만 저는 이번에 모린을 하게 돼 너무 좋다. 지금 이 순간의 저에게 너무 잘 맞고, 필요한 역할이다. 지금까지 표현하지 못했던 것들을 표현할 수 있어서 좋다. 딱 지금 제게 와야 했던 역할이다. 모린을 아이다 전에, 판틴 전에 했으면 달랐을 것 같다. 그동안 표현하지 못했던 부분을 쌓아왔다가 자신 있게 표출할 수 있으니 더 좋은 것 같다.
Q. 오디션을 여러 차례 거쳤다고. 오디션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였나.
김수하: 오디션을 보기 전부터 ‘나영 언니는 무조건 모린이다’라고 했다. 언니는 그냥 오디션장에 들어가면 뽑힌다고. 안 뽑을 수가 없다고 했다.(웃음) 저는 세 번의 오디션이 있었는데, 1차 오디션에 정말 제 나이 또래의 모든 배우가 모여있었다. 그걸 보고 ‘안 되겠다’ 했다. 대기할 때 주눅이 들어서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다.
오디션을 볼 때 정말 미미처럼 하고 갔다. 머리도 붙이고 화장도 진하게 하고 의상도 준비해서 갔다. 딱 오디션장에 들어갔는데 연출님이 ‘와우’라고 했다. 그걸 듣고 내가 준비한 게 맞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자신감 있게 했다. 지금 공연에서 그러는 것처럼 모든 걸 쏟아붓고 나왔다.
전나영: 저는 1차 오디션 때 ‘take me or leave me’를 불렀다. 저도 집에 있는 옷들을 보면서 모린이 뭘 입을까 하면서 고르는 과정이 즐거웠다. 정말 컬러풀하게 입고 갔다. 두 번째 오디션 때는 (조앤 역의)다희와 함께했다. 제가 먼저 들어가서 ‘Over the Moon’을 불렀다. 영국에서 ‘미스사이공’ 공연을 할 때 MD로 나온 물통이 있다. 그게 스테인리스 재질인데, 그걸 가져가서 막대기로 막 두드리면서 연기했다. 그래서 아직도 그 물통이 휘어져 있다.(웃음) 그 추억이 그렇게 남아있다.
그때는 준비할 시간이 많이 없었는데, 장면의 완성도 보다는 내가 모린에게 어떻게 접근하는지 보고 싶어하는 게 느껴졌다. 또 다희와는 처음부터 합이 잘 맞고 즐거웠다. 오디션 때는 무대에서보다 더 자유롭게 했는데, 그때의 경험이 무대에서 힘이 되고 영감이 되는 것 같다. 그때 연출님이 우리 안의 캐릭터를 보고 모린과 조앤으로 정한 것 같다.
Q. 연습 과정에서 많은 얘기가 오가고, 서로의 아픔을 털어놓는 시간도 있었다고.
김수하: 1막 연습을 다 끝내고 2막에 들어가기 전에, 연출님이 힘든 작업이 될 거라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오라고 했다. 다음날 ‘Seasons of Love’를 연습하기 전에 다 같이 모여서 한 명씩 이야기를 했다. 앤디(연출)는 ‘이 노래를 누구에게 불러주고 싶은지’에 대해서 얘기하자고 했는데, 다들 자기의 상처와 아픔을 꺼냈다. 그 사람을 알게 된 시간이었다.
전나영: 그 이야기를 하는 내내 ‘Seasons of Love’가 계속 연주됐다. 배우들이 자연스럽게 그 분위기에 들어간 거다. 3시간 동안 한 명씩 얘기했고, 다 울었다. 그날 정말 많이 친해졌다.
저는 네덜란드에서 절 키워주신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를 생각했다. 내 꿈을 마음에 품게 해주셨고, 사랑을 알려주셨다. 네덜란드를 떠난 지도 7년이 넘었는데, 그때가 너무 그립고, 얼마나 좋았는지 생각난다. 시간이 정말 소중하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 과거에 빠져있지 않고, 미래에 빠지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해야겠다는 걸 느꼈다.
김수하: 저는 어린 시절의 저에게 불러주고 싶었다. 뮤지컬 배우가 되겠다고 생각한 게 초등학교 5학년 때였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저는 앞만 보고 달렸다. 뒤돌아본 적도 없고, 주위를 살펴볼 시간도 없었다. 그 어린 제가 상처받았던 순간을 저도 모르게 ‘나 괜찮아’하고 외면하고 앞만 보고 뛰었다는 걸 그때 얘기를 하면서 깨달았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저에게 불러주고 싶었다.
Q. 그렇게 깊이 있는 연습 과정을 거치면서 정말 많은 걸 느꼈을 것 같다.
전나영: 제가 조금 더 저를 보호해도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모두가 불안함이 있고, 아픔이 있고, 사랑받고 싶고, 사랑하고 싶은 인간이라는 걸 ‘Seasons of Love’ 연습하면서 느꼈다.
그리고 ‘Over the Moon’이 되게 어려웠다. 앤디가 하나도 정해주지 않고, 경아와 연습도 함께 안 시켰다. 아무런 준비도 안 했는데 장면 만든 걸 보여달라고 하더라. 모든 사람이 동그랗게 앉아서 연습하는 걸 지켜봤다. 내가 ‘Over the Moon’을 설명하는 게 아니라, 보는 사람이 느낄 수 있게 하라고 했다. 처음에는 이해가 잘 안 됐지만, 애쓰면서 표현하고 있었다.
근데 앤디가 ‘너는 네가 아웃사이더라는 마음이 강하게 있는 것 같다, 너는 우리랑 다른 게 아니다, 우리는 너를 완전히 믿고 따라가고 싶은데 네가 우리를 안 믿고 있는 것 같다’고 하더라. 그게 저한테는 배우로서도, 사람으로서도 깨달은 부분이다. 내 주변 사람들이 내 편이고, 날 응원해주고, 내가 표현하는 걸 함께 느끼고 싶어한다는 걸 느꼈다. 그런 시간을 갖고 나서 우리 팀도 나를 정말 많이 응원해주고 있다는 걸 느꼈다.
저는 저의 ‘Over the Moon’을 찾고 표현해야 했다. 그러려면 전나영으로서 어떤 것에 시위하고 싶고, 어떤 것에 반대하고 싶은지, 내가 뛰어넘고 싶은 달이 뭔지 찾아야 했다. 그 생각을 정말 많이 했다. 한 번은 연출님이 내 앞에 있는 인물을 하나씩 만들어서 예를 들어줬다. 그러다가 제 할머니가 오셔서 ‘Over the Moon’을 듣고 계신다고 예를 드는데, 외국에서 살아온 우리 할머니가 ‘미운 오리 새끼’ 같다는 마음이 들어 너무 화가 났다. 이방인인 우리 할머니도 스스로를 낮추지 않고 목소리를 낼 수 있고, ‘음메’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이다. 저 역시 아직 소외감을 느낀다. 내가 한국인이 아니고 외국인이라고 생각하게 한다. 그런 부분도 언젠가는 바뀔 거라고 믿는다.
김수하: 두 번의 경험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미미가 로저에게 ‘우리 오늘밖에 없잖아’ 하고 얘기하는 장면에서, 매달리는 것처럼 연기하니까 앤디가 미미는 그러면 안 된다고, 로저와 미미 사이에 공간을 두고 너의 이야기를 하라고, 미미가 앞으로 나오지 말고 이야기를 앞에 두라고 했다. 근데 그게 잘 안 되는 거다. 그러니까 앤디가 무릎을 세우고, 상체에 힘을 뒤로 주라고 하더라. 그러니까 제 안에 있는 미미가 확 나왔다. 그 순간 정말 힘이 딱 생겨서, 신내림 받은 것처럼 그 느낌이 확 왔다.
또 ‘Without You’에서 제가 너무 한 톤으로 표현하는 것 같다고, 조금 더 자유롭게 표현하라고 하더라. 그러면서 종원이와 정모 오빠를 시켜서 저를 잡게 했다. 그걸 빠져나오라고 하더라. 근데 당연히 몸부림쳐도 못 빠져나오지 않나. 하면 할수록 억울하고, 내가 이걸 왜 해야 하지 라는 생각이 들더라. 앤디가 자신에게 오라고 하는데,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는 상황을 느끼고 이게 미미의 마음이구나 했다.
Q. 25년이라는 시간 동안 공연되고 있는 작품 아닌가. 특히 이 힘든 시기에 ‘렌트’가 공연된다는 게 굉장히 뜻깊을 듯하다.
김수하: 지금 이 상황이 ‘렌트’와 너무 비슷하다. 저희 연습 처음 시작할 때 앤디가 ‘이번에 공연되는 게 신의 한 수’라고 했다. ‘렌트’가 어떤 병인지도 제대로 몰랐던 전염병의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 상황이 너무 공감되더라. 장면을 연기하고 있으면 이게 진짜 이야기 같고,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일처럼 느껴진다.
전나영: 이 세상이 혼란스럽지 않나. 코로나19 뿐만 아니라 인종차별에 대한 문제도 있다. ‘렌트’도 차별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작품 아닌가. ‘렌트’를 보고 그런 부분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하게 되고,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면 좋을 것 같다.
Q. 예술가의 삶을 그린다는 점도 와 닿았을 텐데.
김수하: 대표님이 ‘렌트’는 정말 예술가들의 한과 혼이 담긴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다. ‘렌트’를 보면 어렸을 때 함께 일했던 저희 나잇대의 친구들이 떠오른다고 하셨다. 연습하기 전에는 그런 걸 들어도 잘 못 느꼈는데, 공연이 오르고, 마지막에 마크가 영상을 틀어주면서 우리의 모습이 나오는 걸 보면 지금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순간이고, 이 시간이 정말 소중하구나 라고 느낀다.
마지막에 미미가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지 않나. 정말 죽었다 깨어난 게 아니라 기절했다가 다시 깨어나는 느낌이다. 마약과 치료용 약을 너무 많이 먹어서 잠깐 기절했다가 엔젤이 깨워준 건데, 그 장면에서 정말 새로 태어나는 기분이다.
전나영: 극 중 젊은 예술가들처럼, 뮤지컬을 앞으로 10년, 15년을 더한다고 해도 똑같은 열정으로 하고 싶다. 그 열정이 아직 살아있을 때 ‘렌트’를 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렌트’는 열정을 오래 기억할 수 있게 해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수록 생각할 것들이 많고, 내가 표현하고 싶은 열정보다는 남들이 어떻게 나를 받아들일까 하는 걱정이 더 중요해질 수 있지 않나. 하지만 모린은 그렇지 않다. 자기가 믿고 있는, 가지고 있는 모든 걸 바치면서 하는 인물이다. 저도 끝까지 그런 배우이고 싶다.
Q. 각각 모린, 미미와 닮은 점이 있다면.
김수하: 열정적인 모습과 강한 모습이 비슷하다. 미미는 에이즈에 걸렸기 때문에 자신이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내일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이 있지만, 그 안에서 자신이 삶을 살아가야겠다는 열정이 있다. 내일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저는 특히 뮤지컬 무대에 설 때 정말 내일이 없듯이 무대에서 제일 열정을 쏟아붓는 것 같다. 그리고 미미가 사랑을 할 때,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 어떤 순간순간에든 인생을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저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나영: 모린도 나처럼 활발하고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경계 없이, 자유롭게 사람을 만나고 사랑하는 사람인 것 같다. 저도 모린처럼 제가 봤을 때 ‘이건 옳지 않다’는 느낌이 들면 그 의견을 표현하고 많은 사람한테 알리고 싶은 마음이 있다. 모린이 ‘Over the Moon’ 공연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싶은 마음처럼 저도 극 중 같은 차별의 문제에 있어서 사람들의 생각을 조금이라도 바꾸고 싶다.
Q. 모린은 전작들과는 조금 다른 느낌의 인물이다. 연기하는 입장에서도 다른 매력을 느낄 텐데.
전나영: 정말 신난다. 어떤 공연이든 컨디션이 좋아야 하지만, 모린은 정말 제가 완전히 깨어있어야 하고, 100% 채워져 있어야 한다. 그래서 정말 떨린다. 1막을 시작하고 50분을 기다려야 하는 캐릭터다.(웃음) 그 시간 동안 내가 이걸 왜 하는지, 누구를 위해 하는지 계속 기억하려고 한다. 그래서 ‘Over the Moon’의 등장이 더 강렬하고 재밌고, 폭발하는 느낌인 것 같다. 하지만 마냥 신나서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위로해주고 싶은 사람들, 화가 나고 눈물 나는 삶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을 위해 내가 목소리가 돼서 외치는 거라고 생각한다.
Q.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으로 한국 데뷔를 하고, 차기작을 기다리는 관객이 정말 많지 않았나. 진이에게서 벗어나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을 것 같다.
김수하: 그 전부터 팬분들이 미미를 해달라는 얘기를 많이 하셨다. 캐스팅이 발표되고 나서 많이 좋아해 주시고 기대해주셔서 감사했다. 또 제가 원래 하고 싶었던 작품이고 역할이었으니 영광스럽고 기대됐다. 꿈을 이룬 소녀의 마음이었다.
사실 ‘외쳐 조선’이 끝나고 조선 시대에서 뉴욕으로 오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한 달 정도 공연과 연습이 겹쳤다. 낮에는 연습하고 밤에는 공연하는 일정이었다. 근데 진이를 연기하면서 저도 모르게 억누르고 있던 부분이 많았더라. 진이는 감정을 숨겨야 하고, 숨어야 하니까. 근데 낮에 ‘렌트’ 연습을 하고 돌아와서 밤에 공연을 할 때는 제가 마음이 자유롭고 여유로워진 상태여서 진이를 연기할 때도 힘들기만 하진 않았다. 진이를 연기하면서 힘든 시간이 많았고, 특히 앙코르 공연 때 더 그랬는데, ‘렌트’를 연습하면서 시너지 효과가 났다.
Q. 지난 1년 동안, 전나영은 한국에 자리를 잡고 ‘아이다’와 함께했고, 김수하는 한국에서 데뷔한 뒤 ‘외쳐조선’과 함께했다. ‘렌트’ 무대에 오르고 있는 지금, 지난 52만 5600분의 시간을 되돌아보면 어떤 시간이었나.
김수하: 지난 1년간의 시간을 되돌아본다면, 너무 감사했던 순간밖에 없는 것 같다. 사실 지난해 3월에 ‘외쳐 조선’을 위해서 한국으로 오게 됐을 때 두려운 마음이 많았다. 외국에서 오래 활동을 했고, 한국 관객분들에게는 저라는 배우가 생소할 수 있었기 때문에, 과연 저라는 배우를 받아들여 주실 수 있을까? 내가 연기하는 진이를 같이 공감하고 이해해주실 수 있을까? 하는 부담감과 걱정이 많았다. 그래서 오픈 날까지 첫 번째 곡이 끝나고 박수가 나올 때까지 정말 걱정을 많이 했다.
그런데 진이라는 역할을 많이 사랑해주셨고, 저 김수하라는 배우를 환영해주시고, 너무 예뻐해 주셔서 정말 감사했었다. 거기다가 신인상까지 받게 돼서 저는 관객분들께도, 진이에게도 감사했던 1년이었다. 거기다가 제가 너무 하고 싶었던 미미라는 역할로 ‘렌트’에 참여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 지금 20대 후반인 저에게 뭔가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는 순간에 ‘렌트’라는 작품을 만나게 되어서 저에게는 지난 1년이 잊을 수 없는 순간인 것 같다.
전나영: 저는 딱 1년 전에 한국에 왔다. 지난 1년이 저에게 엄청 뜻깊은 시간이었고, 한국 무대에서 한국 배우들과 작업을 하고 한국 관객들을 다시 만나는 시간이 너무 행복했다. 관객분들에게 받은 사랑과 응원이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크고 뜨거웠고, 그 응원을 통해 제가 더 용감해진 것 같다.지난 1년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용기’다. 제가 생각한 저보다, 저는 훨씬 용감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시간이었다.
Q. 두 사람은 많은 공통점을 지닌 동료 아닌가.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가.
김수하: ‘렌트’ 오디션을 보기 전부터 서로에게 ‘너는 미미야’, ‘언니는 모린이야’ 했었다. 그래서 같이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이렇게 같은 무대에 설 수 있어서 정말 소름 돋는다. 저희 집에서 연습실로 가는 길에 언니 집이 있다. 그래서 언니와 함께 연습을 가면서 얘기도 많이 하고, 울고 웃는 시간을 보냈다.
전나영: 수하가 자랑스럽다. 수하가 지금보다 어릴 때부터 해외에서 어려운 역할을 하면서 아름답고 프로페셔널하게 공연해온 걸 기억하지 않나. 그런데 지금 수하에게 편한 환경, 언어에서 날개를 달고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걸 보니 더 자랑스럽다. 수하도 나의 다양한 모습을 알지 않나. 저는 한국에 그런 사람이 많이 없다. 제게 큰 힘이 되어주고 있는 동생이자 친구다.
Q. 꿈과 열정, 삶과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는 작품인 만큼, ‘렌트’라는 작품을 하며 본인의 신념이나 마인드가 변한 부분도 있을 것 같다. 이번 작품을 통해 얻어가는 게 있다면.
김수하: 저는 늘 미래를 걱정하면서 살아왔다. 미래를 계획하면서 살아왔고, 앞으로 뭘 하면 좋을까 당장 내일 뭘 먹을까를 고민하면서 살았고, 날씬해지고 싶고, 더 예뻐지고 싶었다. 저에 대한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있었던 거다. 그런데 ‘렌트’를 만나고, 또 미미를 만나고 나서는 내일을 전혀 걱정하지 않게 됐다. 오늘 하루를 온전히 살아가게 된 것 같다.
그리고 내일을 걱정하기보다는, 오늘,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조금 더 돌아보게 됐고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됐다. 그리고 계산하지 않고 무대에서도 미미처럼 순간순간 열정적으로 살아가고, 순간순간을 불태우면서 연기하고 있다.
전나영: 이 작품을 통해 얻어가는 것이 너무너무 많다. 저는 앤디 연출이 이번 공연을 하면서 저에게 해준 이야기들 덕분에 제 자신을 깊이 알게 된 것 같다. 사람으로서, 배우로서, 그리고 나 혼자 살고, 나 혼자 표현하고 연기하는 것이 아무 의미 없다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됐다. 제가 무엇을 하든지, 저의 행동이 다른 사람을 바꿔놓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작품 속에서도 모린이 혼자 놀거나, 혼자 웃기려고 공연을 하는 것이 아니고, 모린의 공연을 보러온 사람들을 위해서, 그들을 바꾸기 위해서, 모린이 느끼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느끼게 해주려고 하는 것 아닌가. 모린은 조앤과의 관계 안에서도 ‘나는 이러니까 나를 받아줘’라고 말하긴 하지만, 나랑 사랑하고, 나를 아끼고, 나를 따라와 주는 조앤이 있으니까 모린이 그런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거다.
‘take me or leave me’를 나 혼자 부르는 것이 아니라, 그 단어 하나하나를 통해 조앤을 바꾸고, 조앤한테 어떤 영향을 주고 싶어하는 감정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제 삶 속에서도 제가 혼자 옳고, 재밌고, 자유롭게 사는 것보다는 주변 사람들에게 저 스스로가 어떤 의미가 되고 싶은가에 대해 제가 그동안 너무 생각을 안 하고 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조금 더 다른 사람의 시선을 생각하고, 다른 사람에게 제가 어떤 의미가 될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됐다. 배우로서 저의 생각을 정말 많이 바꿔준 작품이다.
Q. ‘렌트’라는 작품이 오랜 시간 사랑받는 이유, 배우들이 꼭 해보고 싶은 작품으로 꼽히는 이유를 생각해보자면.
김수하: 아무래도 작품이 주는 메시지와 음악이 아닐까. 사랑 하나로 다 관통할 수 있다는, 사랑이 없으면 모든 것이 부질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사랑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렌트’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가슴을 울릴 수 있는 메시지인 것 같다. 그리고 조나단라슨이라는 작가이자 작곡가가 그 작품이 올라가기도 전에 불운하게 생을 마감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있어서도 관객분들이 더 감동적으로 이 작품을 봐주시는 것 같다.
또 제가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느꼈던 건, 저라는 사람을 제가 더 많이 알게 되고 저도 보지 못했던 제 모습을 자꾸 만나게 돼서 당황스러울 때가 많았다.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제 인생을 돌아보게 되고, 저 자신을 더 알아가고, 제 자신과 더 친해지고, 결국에는 저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만들어준 작품이라 저에게는 소중한 작품이 된 것 같다. 배우들이 꼭 해보고 싶어하는 이유는 음악인 것 같다. 아무래도 뮤지컬 음악이 좋으면, 마음이 가기 마련이다. 그런 음악을 제 입으로, 제 마음으로 부를 수 있다는 게 꿈이 되지 않을까 싶다. 저도 그렇다.
전나영: 우리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아주 직접적으로 느끼게 해주는 작품인 것 같다. ‘오직 오늘뿐’이라는 말이 주는 의미가 크다. 우리는 특히 나이가 들면서 두려움이 커지고, 그러면서 우리가 본능적으로 줄 수 있는 사랑을 주지 못할 때가 있는데, ‘렌트’는 우리가 마음을 더 열게 한다.
배우들이 이 작품을 꼭 해보고 싶어하는 이유는 관객들이 ‘렌트’를 좋아하는 이유와 비슷할 것 같다. ‘렌트’의 힘은 ‘오직 오늘뿐’이라는 메시지고, 저희는 배우로서 작품 안에서 그것을 배우고, 더 느끼기 위해 노력한다. 다른 작품과는 달리, 가꾸지 않은 날 것의 ‘나’를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이다. 그런 작품이 별로 없다. 우리는 뮤지컬 배우로서 화려한 삶을 살 때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렌트’에 나오는 캐릭터들과 똑같은 삶이기도 하다. 성공하고 싶은 예술가고, 그 예술 안에 있는 열정을 잃지 않으면서 이 뮤지컬을 하는 배우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기하면서 ‘나는 왜 뮤지컬 배우인가’에 대해서 저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것 같다.
Q. ‘렌트’가 2020년의 관객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길 바라나.
김수하: 모두가 힘든 상황인데, 저희 작품을 보시고 조금이라도 위안을 얻어가셨으면 좋겠다. ‘이 친구들이 정말 힘든 순간에서도 저렇게 사랑하며 살았구나, 그리고 결국에는 사랑이구나’라는 것을 함께 느끼시고, 친구들에게 사랑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라는 것을 알려주고 떠난 엔젤처럼, 그 엔젤이 살려준 미미처럼, 그리고 그 사랑을 깨닫고 조금 더 열심히 살아가는 저희 친구들처럼 그들을 보시고 용기와 위안과 감동을 얻어가셨으면 좋겠다.
전나영: 특히 2020년에는 이 세상에 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 코로나도 그렇고, 미국에서 인종차별에 대한 이슈도 그렇다. 정말 많은 사람들의 삶이 바뀌는 1년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공연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저희는 ‘렌트’ 공연을 하고 있고, 그만큼 더 오직 오늘뿐이고, 소중한 사랑을 아낌없이 하라는 그 메시지가 사람들에게 전달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