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투데이뉴스=이은진 기자] “아무리 생각해도 매번 매번 진심으로 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진심은 통하고, 거짓은 탄로가 나니까요.” 2022시즌 뮤지컬 ‘아이다’의 뉴 캐스트, 배우 김수하가 연예투데이뉴스와 인터뷰로 만났다.
뮤지컬 ‘아이다’는 팝의 거장 엘튼 존과 뮤지컬 음악의 전설 팀 라이스가 탄생시킨 브로드웨이 뮤지컬이다. 누비아의 공주 아이다와 이집트 파라오의 딸 암네리스,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는 이집트 장군 라다메스의 엇갈린 사랑과 우정을 그린 작품으로, 2005년 국내 초연 이후 올 시즌으로 마침내 누적 관객 100만 명을 넘어선 스테디셀러다. 원작사 디즈니 씨어트리컬 프로덕션이 작품 재정비를 위해 현재의 브로드웨이 레플리카 버전을 중단하고 새로운 버전을 제작할 계획을 밝히면서 2019~2020시즌을 ‘그랜드 피날레’로 명명했으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갑작스럽게 부산 공연이 취소돼 온전한 안녕을 고하지 못하고 아쉬움을 자아낸 바 있다.
그렇게 원망스러웠던 코로나가 뜻밖에 ‘아이다’ 부활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역시 코로나 팬데믹으로 원작사의 ‘아이다’ 뉴 버전 제작이 잠정 중단되면서 현 버전이 다시금 관객과 만날 수 있게 된 것. 그 계기로 김수하는 오디션을 통해 주인공 아이다 역으로 새롭게 발탁돼 호평 속에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김수하를 두고 뮤지컬 팬들은 ‘실력으로 깔 게 없다’고들 한다. 웨스트엔드 ‘미스 사이공’에서 한국 배우 최초로 주인공 킴을 연기했다고 하니 대강 수긍하는 게 아니다. 2019년 국내 데뷔 이후 지난 4년간 김수하의 연기를 직접 본 관객들의 평가가 그렇다. 흔히 공연계 배우들이 첫 드라마 현장에서 고전하는 이유가 무대 연기 특유의 오버 액팅 자투리가 배어 나오기 때문인데, 말하자면 김수하의 연기는 그런 자투리가 없다. 대신 움직임 하나하나에 역동성이 크고 연기 전반에 넘치는 에너지가 팔팔하면서도 날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오버인 듯 전형인 듯 미묘한 경계를 매우 똑똑하게 넘나든다. 깔끔하고 똑소리 나는 대사 처리, 청량하고 곧은 보이스 톤에 시원시원한 가창도 으뜸이다. 그에 힘입어 김수하는 국내 데뷔작인 ‘스웨그에이지:외쳐 조선!’으로 제4회 한국뮤지컬어워즈 신인상을, 이듬해 ‘렌트’로 동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차지하는 등 업계 안팎에서 실력을 인정을 받고 있다.
그런 김수하도 오디션에서 떨어지길 다수다. 업계에 따르면 실력보다 인지도에서 밀린 경우가 대부분이다. 국내 뮤지컬 시장의 특성상 스타 마케팅이 작품의 흥망을 좌우하고, 특히 대형사 작품에는 해외 원작, 해외 인물이 주인공인 작품이 많아 이왕이면 서구적인 마스크를 원하는 분위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례로 ‘스웨그에이지:외쳐 조선!’ 초연 프레스콜 이후, 기자들 사이에서는 실력이 너무 넘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그럼에도 국내 활동에는 한계가 있지 않겠느냐는 목소리도 있었다. 누가 봐도 곧장 대극장에 설 실력인데 인지도는 제로에 가까우니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리얼 쌩 신인 배우’ 김수하에게 가장 먼저 화답한 것이 다름 아닌 관객이다. ‘스웨그에이지:외쳐 조선!’은 놀라운 신인들의 반란으로 초연부터 매진을 이루는 등 깜짝 대성공을 거뒀다. 이후 다수의 작품을 통해 김수하는 기대주를 넘어 믿고 보는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나아가 김수하와 같이 실력 있는 배우가 크게 성장할수록 한국 뮤지컬의 스타 의존도를 낮출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끌어내는 중이다.
특히, ‘스웨그에이지:외쳐 조선!’ 전 시즌, ‘렌트’, ‘포미니츠’ 초연, ‘하데스 타운’ 초연에 이어 최근의 ‘아이다’까지, 지난 4년의 필모그래피만 보아도 김수하의 작품 성향은 또래 배우들과 사뭇 다르다. 지극히 한국적인 소재에 현대적 감각을 입힌 작품,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 위로와 힐링을 공유할 수 있는 작품, 슬슬 옛 유행으로 접어든 유럽풍 스타일을 벗은 신선한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 드라마와 앙상블이 뛰어난 작품 등이 포진해 있다. 소위 출연을 위한 출연작이 없다.
그중에도 스스로 “운명과 같았다.”고 말한 바 있는 뮤지컬 ‘아이다’는 2000년 초연된 작품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탄탄한 드라마를 자랑하는 작품이다. 이번 시즌은 새롭게 투입된 김수하, 민경아를 제외하고 윤공주, 전나영, 아이비, 김우형, 최재림 등 주, 조연부터 앙상블 배우들까지 모두 경력자인 덕에 그야말로 완벽한 케미와 호흡으로 관객을 만나고 있다. 여느 스타마케팅 없이도 잘만 팔리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각설하고, 이제 배우 김수하의 이야기를 하나씩 전해보자.
▶한국 데뷔 이후 승승장구? ‘나는 운이 좋은 사람’
“저는 정말 운이 크게 따른 것 같아요. ‘외쳐 조선’이라는 작품을 만나서 새로운 작품의 초연 멤버로 들어가게 되고, 그걸로 신인상을 받게 되고, 또 ‘렌트’는 제 꿈의 작품이었거든요. 정말 꼭 해보고 싶었던 작품이고 역할이었는데 마침 9년 만에 오게 돼서 ‘미미’를 할 수 있게 되고, 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는데 그걸로 또 상(여우주연상)을 받게 되고, 그렇게 되니까 뭔가가 마치 기다려줬던 것처럼. 그리고 ‘포미니츠’도 ‘하데스 타운’도 대체로 또 초연을 많이 하게 됐는데, 하필 또 ‘하데스 타운’이나 ‘아이다’는 코로나로 인해서 오게 된 거잖아요. 오죽하면 부모님께서 ‘너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웃음), 저도 제 입으로 항상 그래요. 나는 정말 천운을 타고난 사람이다, 정말 감사한 사람이라고.”
▶데뷔 초 국내 활동 우려의 시선..‘대표님만 믿고’
“그런 우려들은 사실 저한테 직접적으로 얘기하진 않잖아요. 하지만 저도 있었고, 아마 대표님도 많이 고민하시고 걱정하시지 않았을까 싶은데, 대표님은 뭔가를 믿으셨던 것 같아요. ‘언젠가는 알아줄 거야, 그 진심을’. 그래서 저는 정말로 그냥 대표님만 믿고 했어요. 처음에 한국에 올 때도 제가 책임지시라고 했거든요(웃음). 왜냐면 저는 다시 복학하려고 오는 건데 대표님이 ‘외쳐 조선’이라는 작품이 있는데 꼭 해줬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대표님 저 복학해야 하는데 그러면 책임지세요’ 했더니 책임지겠다고, 그래서 여기까지 온 거예요(웃음). 아직 복학 못 했는데, 언제고 기회를 보고 있습니다.”
▶남다른 필모그래피..‘최우선 선택은 공감’
“처음에 ‘스웨그에이지’ 할 때만 해도, 아무래도 한국 첫 데뷔고, ‘배우로서 흠을 보이면 안 되겠다.’ 그런 생각이 컸는데, 작품을 하면 할수록 그리고 제 연기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제 초점이 위로와 공감에 맞춰지더라고요. 그러니까, 보시는 분들에게도 배우인 저에게도 위로를 주는 작품? 진짜 큰 책임감을 느꼈을 때가, 한 번은 메시지를 받았는데 ‘그냥 삶을 포기하고 싶던 순간에 배우님 공연을 봤는데 살아야겠다는 희망을 얻었다.’라는 글이었어요. ‘의사만 사람을 살리는 게 아니구나, 배우도 사람을 살릴 수 있구나’, 그 메시지를 접한 이후에 정말 엄청난 책임감이 생기더라고요. 단 한 분이라도 혹여 안 좋은 마음을 돌릴 수 있다면 그걸로 난 성공한 거다. 해서 정말 순간순간을 더 소중하게 연기하게 되고, 그렇다 보니까 작품 자체도 드라마가 있는, 또 메시지가 확실한 작품을 할 때 저도 더 행복하고요.”
▶나는 잘하고 있을까..‘어쩐지 아이다와 같은 성장’
“나름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아이다’를 연습하면서 정말 엄청난 고난을 겪었죠. 사실 매 작품이 그랬던 것 같긴 한데, 이번에 유독 심했어요. 저랑 경아 언니 말고는 언니, 오빠들, 앙상블 분들까지 전부 ‘아이다’를 하셨던 분들이잖아요. 첫날 연습을 갔는데 딱 그대로 공연을 할 상황이더라고요. 거기서 완전 충격을 받은 거예요. 진짜 얼마나 심했냐면, 제 성격이 원래 힘들어도 내색을 잘 안 하고 티도 잘 안 내요. 그런데 이번에 처음으로, 두 번째 드레스 리허설 1막 끝나고 저희 대표님한테 ‘저 지금이라도 안 할 수 있으면 안 하고 싶다. 제가 할 수 있는 능력치를 벗어난 것 같다. 자격이 없는 것 같다.’ 그런 얘기를 했어요. 불가능한 일이란 건 저도 잘 알죠. 그 정도로 그냥 도망치고 싶은 거예요. 그런데 늘 혼자 끙끙 앓던 사람이 처음으로 그렇게 속을 탁 내뱉고 나니까 오히려 뭔가 이겨내게 되더라고요. 첫 공연 때 진짜 정신을 바짝 차리고 했어요. 그리고 정말 다행히 준비한 것보다 잘 마쳤어요. 발전이라는 게 언덕 오르는 것처럼 완만하지 않고 계단을 오르는 것 같다고 하잖아요. 정말 계속 벽에 부딪히는 느낌이었는데 어느 순간 한 계단 탁 올라서는 느낌? 누구도 저한테 잘해야 한다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는데, 기대에 못 미치면 어쩌나, 실망하시면 어쩌나, 그냥 제가 만든 부담감이 저 스스로를, 마치 진짜 아이다처럼 짓눌렀던 거죠.”
▶NEW 아이다..‘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아이다로’
“‘아이다’ 하면 딱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잖아요. 그렇다고 ‘내가 이걸 깨야지, 새로운 아이다를 보여주겠어’ 이런 마음은 아니었어요. 사실 연습 때만 해도 그 시간 내에 해내는 것이 급했어요. 해내지 못하면 섞일 수 없으니까. 다들 정말 많이 기다려주셨고, 새로운 캐스트들을 위해서 조금 다른 시도도 많이 해주시고, 연출님도 아예 처음부터 ‘아이다는 이래야 해’ 하는 게 없이, 그냥 제가 느끼는 대로 해도 된다고 하셨거든요. 만약 다 같이 처음이었으면 조금 더 시행착오를 겪었을 수 있어요.”
“사람 같은 아이다. 뭔가 영웅적이거나 전사 같은 용맹함만 있다거나 또는 너무 사랑에 치우치거나 그런 아이다보다는 좀 더 실제 같은 ‘사람’ 아이다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사람이 그렇잖아요. 이랬다가 저랬다가, 배고프다가도 밥 먹으면 금방 기분 좋아지고. 작품 속 아이다의 이야기지만, 현실에 있을 법한 또래 여자 사람. 그런 아이다를 만들어보자. 공감할 수 있는 아이다를 만들어보자. 끌려온 와중에 왜 사랑에 빠지게 되고 결국에는 그런 마지막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 그것을 설득해야 공감을 살 수 있겠다. 보는 누구라도 그냥 ‘나 같은 아이다’, ‘나도 저럴 때가 있었지’ 그런 공감을 사고 싶었어요. 그건 어떤 작품을 하든 제 목표가 항상 그거였어요. 캐릭터에 공감할 수 있게 해드리고 싶다.”
▶나를 아이다로 만드는 진짜 주인공..‘앙상블’
“특히 일요일 저녁 공연은 (앙상블 배우들이) 다들 지쳐서 눈도 뜬 채 만 채 정말 좀비처럼 다녀요, 너무 피곤하니까. 그런 모습을 보면 ‘아, 내가 무대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 근데 그게 또 아이다의 마음이잖아요, 그런 사람들을 일으켜 세워야 하는. 그런데 막상 무대에서는 (지친 기색이) 티가 하나도 안 나요. 무대 딱 올라가면 바로 해내잖아요. 그런 모든 것들이 저를 더 아이다에 몰입할 수 있게 하는, 너무 그냥 모든 게 다 맞는 거예요. 많이 알지도 못할 어린 소녀가 힘들어하는 이들을 일으켜 세워야 하는, 딱 그런 느낌인 거예요.”
‘”로브(댄스 오브 더 로브/Dance of the Robe)’를 하는데, 진짜로 사람이 악에 받쳐서 하는 그 기운이 느껴진달까요. 뭔가 언니, 오빠들이 이렇게 끌어올려 놓은 것을 내가 잘 이어받아야겠다, 그 생각밖에 안 들어요. ‘수하야, 할 수 있어’ 하는 것 같은, ‘그래. 해내야겠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충분해’를 잘하는 것밖에 없다’. 제가 노래하기 전에 다들 저한테 ‘아이다, 아이다’ 하면서 오는데, 순간 1초 만에 사우나가 돼요. 그 입김들이 확 오거든요. 그 열기가, 내가 이걸 제대로 받지 않으면 이 사람들 다 죽겠구나. 그리고 이 열기는 아이다만이 느낄 수 있는 거잖아요. 그 순간이 너무 소중한 거예요. 나는 정말 행운아다. 그래서 ‘누비아(더 갓 러브 누비아/The Gods Love Nubia)’ 때가 참 좋은 게, 그런 것을 제가 줄 수 있는 신이 있어서 정말 좋더라고요. 멀리서 그냥 힘들겠다, 어떡하지 하는 게 아니라 진짜 그 무대에서 한 명 한 명 손잡아 주면서 눈을 마주치잖아요. 그러면 다 느껴지거든요. 어떤 날은 누가 마음이 힘든가, 오늘은 좀 괜찮은가 보네, 이런 미묘한 것들이요. 그래서 매일매일 다르고, 또 일주일 수고했고, 정말 잘 해냈고, 재밌었고, 감사했고, 그런 마음을 줄 수 있고, 또 마지막에 다 같이 부를 때는 또 다른 벅찬 느낌이 있고요. 이런 부분까지도 관객분들이 느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참 아쉽죠.”
▶2022년, 인간 김수하를 흔드는 것..‘완벽주의 김수하’
“나를 흔드는 것, 나인가(웃음)? 저는 저를 아주 못살게 굴어요. 무언가를 해내야 할 때 저는 진짜, 저를 벼랑 끝까지 밀거든요. 해낼 때까지 해야 하는 완벽주의 성향도 있고요. 만약 해내야 하는 수준에 안 되면 그냥 미치는 거죠, 될 때까지. (이번 ‘아이다’도) 그 수준이 안되니까 포기하고 싶었던 거예요. 내가 만족이 안 되니까.”
▶세상 태어나 가장 잘한 일..‘웨스트엔드 미스 사이공’
“영어로 ‘미스 사이공’ 한 거? 물론 그 이후로 다른 힘든 일도 있었지만, 그때는 내가 이걸 해냈기 때문에 그 어떤 것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었어요. 안 그래도 어제 새벽까지 잠이 안 와서 예전에 제가 했던 영상들, 사진들을 봤는데, 그때는 분명 힘들었는데 지금 보니까 너무 행복했던 거예요. 정말 귀중한 시간이었고, 그때의 제가 없었다면, 그런 경험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되게 감사하더라고요. 그때를 버티기를 정말 잘했다.”
▶배우 김수하를 향한 기대..‘오로지 정공으로’
“뭘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냥 매번 매번 진심으로 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왜냐면 진심은 통하고, 거짓은 탄로가 나기 때문에 지금 당장은 숨길 수 있어도, 길을 가다가도 처음에 조금 틀었을 때는 ‘이 정도는 괜찮아’ 하지만 그대로 가다 보면 어느 순간 아예 다른 곳에 가 있게 되잖아요. 저는 그걸 항상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그냥 믿는 거예요. 무대 위에서 솔직하고 느껴지는 대로 표현하자.”
한편, 배우 김수하가 출연 중인 뮤지컬 ‘아이다’는 오는 8월 7일까지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에서 공연된다.
연예투데이뉴스/ 이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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